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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분명 휴식기입니다. 사제단 분들이 나와주셔서 잠깐 쉴 수 있는 기회는 됐습니다. 그 분들은 우리에게 힘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바뀐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저는 사제단 분들의 말씀으로 자존감을 얻었습니다. 그 자존감으로 집회에 나설 것입니다.
저는 경찰에게 폭력을 먼저 나서서 가할 생각은 없습니다. 하지만 눈 앞으로 날아온 숟가락과 너트, 그리고 소화기를 보면서 제 몸을 보호하고 싶습니다. 10년 전 제가 복무할 때도 위험해서 잘 쓰지 않던 근접 분사기를 현장에서 보고 경악했습니다. 그 근접 분사기를 보면서 제 눈을 보호하고 싶습니다. 또한 기동대가 휘두르는 방패를 보며 그것에 맞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제가 맞는 건 괜찮습니다. 어떻게 맞으면 덜 아픈지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옆에 함께 하는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장갑을 준비했습니다.
저는 이 장비를 구입한 것이 아무런 쓸모가 없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들은 이 장비를 쓸모있게 할 거 같습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믿음직스럽게' 진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과 정반대로 말이죠. 저는 이 장비가 그저 돈 지랄에 불과하길 바랍니다. 하지만 그들을 믿을 수 없습니다. 아니 그들을 믿기 때문에 이렇게 준비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바라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지금도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준비하고 일어섭니다. 맨 손은 아닙니다만, 최소한의 보호 장구를 갖추고 뛰어갈 겁니다. 이 장비는 저 혼자 구입한 것은 아닙니다. 저와 시위 현장을 함께 다니던 전경 출신 친구와 두 셋트를 구입했습니다. 하나는 제가 하는 그 친구가 달고 다니겠죠. 이전 글에도 이야기했지만 저는 직접 진압을 하지 않는 행정병으로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전북의 전경대 출신으로 평택에 나가서 문정현 신부에게 목덜미를 잡힌 적도 있는 친구입니다. 하지만 둘의 생각은 같습니다. 시민들의 힘을 믿고, 경찰의 폭력에 대항하고자 합니다. 순수한 방어 본능입니다.
하지만 단순하게 방어함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적절하게 기동대의 대원에게 공포를 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압 도중 달려오는 기동대 대원은 시민들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진압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폭도로 보고 자신들을 괴롭히는 존재로 밖에 보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신들에게 폭력을 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우습게 알고 마구 패는 겁니다. 그런 그들에게 우리의 힘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제 힘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전대협의 오월대, 녹두대 같은 사수대가 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럴 여력도 없고 그럴 힘도 없습니다. 현장에서 버스를 끌어 당기다 끊어진 줄 때문에 함께 당기던 시민과 엎어져서 타박상을 입은 연약한 시민입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저항을 할 겁니다. 최소한의 방어를 할 겁니다.
그런데…
당정, 야간 촛불행진 원천봉쇄키로
집회및시위와관련된법의 독소조항을 갖고 무조건 일몰 이후 집회를 불법으로 간주하며 원천봉쇄하겠답니다. 아무래도 제가 이 장비를 쓸 일이 생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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