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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에 입대해서 전투경찰 작전 18xx기였습니다. 덧글로 2004년 입대하신 분이 28xx기라고 하셨으니 아마 지금 복무 중인 전경 분들은 36xx기 정도될 겁니다. 우스개 소리로 1년 먼저 입대한 사람을 아버지, 2년 먼저 입대한 사람을 할아버지라고 하니까 저는 증조 할아버지의 증조 할아버지의... 를 넘는 거죠.
저는 경기지방경찰청의 10xx 기동대에서 근무하다, 부대 변경으로 과천청사 경비대에서 나머지 군생활을 보냈습니다. 과천청사에는 법무부, 농수산부(현재 농림수산식품부), 노동부 등 집회를 불러들이는 정부 기관이 많이 모여있습니다. 원래 세종로 청사에 있던 해당 기관을 분산하면서 집회 유도를 위해 과천 청사로 이전시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만 되면 법무부를 항의 방문하는 분들, 농수산부를 방문하려는 농민 여러분, 그리고 노동부에 항의하려는 수 많은 시민들이 찾아오는 일종의 "성지"였습니다. 그때 저는 직접 시위대를 맞서 방패를 들진 않았지만 후방 지원 등을 하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제가 느꼈던 감정은 슬픔과 분노였습니다. 어째서 이 분들이 이렇게까지 필사적으로 여기를 찾아오는 것일까. 왜 우리는 누구 때문에 이들을 막아야 하는가. 집회가 있을 때 방석모와 무전기를 챙기고 방독면을 다리에 차고, 방패와 단봉을 들고 있으면 가슴이 쓰라렸습니다. 물론 그런 그들을 자신들의 군복무를 힘들게 하는 존재로만 인식하는 사람들도 없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휘관들도 대원들도 그런 어르신들을 최대한 상처 입히지 않고 그러면서 정부 기관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폭도로 보고 물리쳐야 할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그저 버티면서 시간을 끌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현재 시민들을 진압하는 지휘관과 기동대 대원들은 아무런 무기도 들고 있지 않은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연행하고 있습니다. 이들도 물론 힘듭니다. 매일 낮부터 새벽까지 대기하거나 대치하거나, 진압하고 체포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쫓기고 있습니다. 25일 일요일 오후에 시민들이 세종로 사거리를 넘어 광화문 앞까지 진출한 사건 때문입니다. 여태껏 집회 역사상 그곳까지 진출한 적은 없었고, 심지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비폭력 시민들이 뛰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때문에 정부는 경찰청장을 압박하고 그에 따라 기동대 지휘관부터 대원들은 모두 엄청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겁니다.
이해합니다. 하루 종일 상황에 대처하고 부대로 돌아가봤자 쉴 수도 없고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고, 그리고 또 다음날 출동해서 대치하고, 그래봤자 역시 다음날에도 시민들과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 참담하고 지옥 같은 나날일 것입니다. 하지만, 지휘관이 폭력 진압을 명령한다 해서 지나친 폭력으로 자신들의 울분을 터뜨리는 모습은 반성해야 할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이 분노를 터뜨려야 하는 대상은 시민들이 아니라 시민들을 길거리로 내몬 정부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게 어렵죠. 기동대는 군대 체계이고 근무 여견도 어렵고, 아직도 부대 내 폭력이 남아있는 전의경들은 이 상황은 그 고통을 풀 대상을 찾고 싶어질 겁니다.
이해합니다. 모두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게 옳은 것일까요? 명령 불복종으로 피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자신이 우리와 같은 시민이고 잠시 의무 복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시민들을 상처 입히지 않도록 최소한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지휘관은 매일 괴롭히고, 고참은 갈구고 때리고 그런 상황이겠지만 부탁드립니다. 시민들이 다치지 않게 최대한 조심조심 명령을 지키는 척 하면서 시민들과 마주해 주세요.
제가 시민들과 맞서는 경찰공무원 분들께 반성을 촉구하고 이런 부탁을 드리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울 겁니다. 불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 역시 우리와 같은 시민이란 점 잊지 말고 그 마음만을 잃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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