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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오프라인을 폐쇄적이고, 현실의, 그리고 실명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봅니다.
반대로 온라인을 개방적이고, 가상의, 그리고 익명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대변되는 두 개의 세상의 큰 다른 요소를 몇가지 뽑아보았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각각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이고, 제가 생각하는 바와 비슷하게 느끼시는 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이 두 가지를 나누는 큰 요소는, 직접 마주치는가 또는 네트워크를 매개체로 만나는가, 그것이 아니라 익명과 실명의 차이라고 봅니다. 나 자신이 그대로 노출되는가, 노출되지 않는가가,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차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익명성이 왜 이런 차이를 만들고, 익명성이 왜 중요하고, 익명성이 왜 필요한가, 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차이? 그것은 익명성
흔히들, 온라인의 강점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손쉽게 연결할 수 있는 네트워크. 그리고 모니터 너머를 통한 익명성. 저는 여기서 네트워크는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이고, 익명성은 그 방법의 개념이라고 봅니다. 어딘가의 다큐멘타리에서 본 듯 한 것입니다만, "인간은 도구에 의해서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도구에 따라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은 바뀐다." 네트워크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언제 어디서든 다양한 방법으로 손쉽게 서로를 찾고 연결할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은 상시성이 생깁니다. 언제 어디서든 원한다면 연락, 바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네트워크라는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사람이 쓰기 때문에 바뀐 것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네트워크는 그런 상시성만 가져온 것이 아니라, 익명성을 가져옵니다. 사람은 서로 대화를 할 때 표정, 억양, 몸짓 등 여러 요소를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로 써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 그 사람을 특정짓는 실명성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온라인이란 이유만으로 이것은 단절되고 맙니다. 단지, 문자만이 표현 가능한 도구일 뿐입니다. 상시성을 얻는 대신 많은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잃은 것이죠. 그것으로 그 사람이 말하는 문자의 나열로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기 어렵고, 그래서 그 사람이 누구인지 가려지는 익명성이 생깁니다. 오프라인에서의 아이덴티티와 온라인에서의 아이덴티티가 분리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으로 익명성이 생긴 것이죠.
익명성이 있기 때문에 온라인인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이기 때문에 꼭 생기는 것, 그것이 익명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익명성이 왜 중요한가?
익명성은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면서 생겨난 부산물이지만,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엄청나게 바꾸고 맙니다. 온라인에서의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오프라인과 완전 다른 것으로 만들거나, 또는 오프라인의 자신을 완전히 숨기거나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강제가 아닙니다. 반대로, 익명성을 철저히 거부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아이덴티티를 동일하게 만드는 개념도 온라인에서는 있습니다. 싸이월드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입니다. 이런 익명성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을 즐기는 사람들은 선택을 하게 됩니다. 온라인에서의 아이덴티티를 자신이 마음대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의 자신을 원하는대로 펼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것은, 온라인에서와 오프라인에서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완전하게 다르게 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온라인에서 서로 손쉽게 만날 수 있고, 그것은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개방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바뀐 것만으로 사람들의 행동 양식이 바뀌다니. 이것은 주목해야할 문제입니다.
익명성은 왜 필요한가?
이렇게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바꾸기까지 하는 온라인의 익명성은 수 많은 문제점을 만들고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악플, 찌질이, 초딩, 즐 등 익명성을 바탕으로 발생한 문제가 사회의 이슈가 될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막기 위해 실명제를 만들고,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을 약화시키려는 움직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 문제의 해결 방법일까요? 익명성이 온라인을 만든 것이 아니라 온라인이 익명성을 만든 것인데, 그 부산물을 막는다 하여 온라인이란 것이 바뀔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해석이 잘못된 것이죠. 그렇다면 라인이기 때문에 익명성이 생긴 것이므로, 그것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어떨까요? 그렇습니다. 저는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입니다.
온라인에서의 익명성을 살리자.
그렇습니다. 저는 그 익명성이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건데?
계몽의 의도를 담고 '여러분 이렇게 하지 맙시다',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아닙니다. 되려 '여러분이 지금껏 즐기던대로 온라인을 즐기세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사용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서비스를 만들거나, 또는 게임을 만드는 분에게 하는 이야기에 가깝습니다. 또는 제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어떻게 이 온라인의 익명의 개념을 잘 살릴 것인가, 숙제입니다. 제가 서비스를 만들 때 가장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입니다. DCinside처럼 극도로 익명성을 전면에 내세우게 할 것인가, 익명성과 온라인의 아이덴티티를 조화시켜서 만들 것인가. 만약 조화한다면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서비스를 준비할 때마다 이 부분에 많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반영하려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많은 분들은 겉으로 보이는 기능과 User Interface, Grapchis에 관심을 갖고 이 부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듯 합니다. 또는 제가 그런 경우만 보았던가요.
이것은 하나의 제안입니다. 서비스 또는 게임에서 겉으로 보이는 것 뿐 아니라, 이런 내면의 중심 개념을 명확하게 세우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서비스 또는 게임에서 미묘하게 스며나와야겠죠. 사용자에게 강요하지 않고, 서서히 스며들도록. 소위 말하는 중독이겠죠?
지금까지 어찌보면 제 자신의 혼잣말일 수도 있고, 제가 온라인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나갈 때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들을 다시 한번 정리하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글을 씁니다. 처음 제시한 것처럼, 이번은 익명성의, 다음은 가상의, 그리고 개방적인 온라인의 요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볼까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래서 어떤 게임을 만들 것인가, 그것을 이어갈까 합니다.
이 글은 토미에 in Wired - Part 000라는 이름으로 쓴, 제가 만들고 싶은 게임에 대한 컨셉 정리를 하던 도중, 더 중요한 밑바닥의 개념을 정리해보고자, 시작한 글입니다. 언젠가 한번은 이야기해야 할 거 같기도 하고, 이것이 정리가 안되면 그 다음이 없으니까요. 가장 밑바닥 개념부터 시작해서 가지를 쳐나가는 것이 제 서비스/게임 디자인의 방법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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