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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주제/게임

대리?

처음으로 일기 스타일의 글을 쓰는 듯 하다.

정신없는 주말 속에서 평소 못 자던 잠을 퍼지게 잔 주말. 새벽 2시에 일어나서 구름과자와 함께 하다가 아침에 261번 버스를 타고 출근. 예상보다 무지막지하게 시간이 걸려서 거의 1시간 40분 이상 걸림. 을지로에도 제발 버스 전용차선을 좀 달아주시죠...? 퇴계로, 종로 모두 달아놓고 왜 을지로만 없습니까?

그리고는 역시 룰루랄라, 스토리 보드를 펼쳐놓고 놀고 있었다.

분명 게임 개발로써 게임 디자이너로써 일을 시작한 기억인데, 어느새 웹 스토리 보드가 더 익숙하고 그렇다고 웹 스토리 보드 디자이너도 아니고, 어중간한 입장. 이 일 자체가 싫은 건 아니고 나름대로 재미있고 즐기는 일이지만, 한번쯤 순수 게임 개발로 돌아가서 게임 자체를 손대고 싶긴 한데 그런 직접적인 기회는 여태껏 없다.

개발에 있어서든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나는, 수평적인 조직 체계를 선호한다. 수직적인 명령 체계 자체를 극도로 싫어하고, 내게 명령하는 존재를 싫어하고, 명령하는 것도 싫다.

어쨌든, 이건 내 개인적인 취향일 뿐이고.

지금 다니는 회사의 선택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순수 게임 개발 자체를 손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 그리고, 이게 참 미묘한 건데... 나는 내가 경험해보지 못 한 것을 한번쯤은 꼭 해보고 싶어하는 병이 있다. 그게 싫더라도. 그것을 싫어하고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보지 못 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경험해 보고 싶어한다.

지금 다니는 회사에 대해서 안좋은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그다지 수평적이지 않고, 그다지 게임 개발에 대해서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리 바람직하지 못 할 개발 환경이라는 것은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근 몇달간 일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꼈고, 어이없는 상황도 몇건 있었다.

어쨌든... 세월은 흘러흘러, 나는 역시 스토리 보드를 눈 앞에 놓고 좌절하고 있는 찰라. 회의를 하자는 이야기. 제발 좀 회의도 일정 잡고 약속 잡고 합시다, 예?

대리 승진? 갑작스런 이야기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무슨 의미인가. 직급이 뭐가 중요하고 그게 무슨 의미인가. 물론 그것이 내가 원하는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개발 환경에 필요한 요소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언제나 우스개 소리처럼 하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런 말이다. 낮은 직급, 높은 연봉, 여유로운 출근, 칼퇴근. 후자는 흔히들 생각하고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도 아주 자~알 알고 있다.

그런데도, 왜 그런 생각을 하는가 하면, 그것은 바로 수평적 개발 체계에 대한 원망 때문에 생긴 이야기이다. 즉, 직급이란 것이 의미 없고 역할만이 존재하는 개발 체계, 그런 프로세스를 원하고 있는 것이다.

게임이던, IT 업계던, 무척 개방적이고 무척 수평적인 조직 체계를 갖고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둘 중의 한가지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만 두가지 모두를 갖고 있는 경우는 본적이 드물다.

혹자는 내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서 꿈 같은 이상론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상론을 갖지 않고 자신의 꿈을 키워나간다면 그것은 의미 없다고 본다. 분명히 불가능에 가깝고 어려울 것이란 걸 알면서도 자신의 꿈을 키워나가는 것. 그것이 꿈을 꾸고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자의 숙명이 아닐까 싶다.

많은 게임 디자이너-게임 그래픽 디자이너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들은 '어떻게' 보다 '무엇'을 더 소중히 여기는 측면이 있다. 이 두 가지는 닭과 달걀의 관계처럼 서로 말 많은 관계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무엇'을 본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어떻게'를 본다.

어떻게 효율적으로 원하는 것을 만들것인가, 어떻게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인가. 그런 어떻게를 소중히 여기고 그것을 바라보고 게임을 만든다.

수 많은 개발자가 있고 각자의 역할은 다르다. What을 보는 사람이 있으면 How를 보는 사람이 있는 법이다. 그렇기에 나는 How를 볼 수 있는 게임 개발자를 꿈꾸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