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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0월 20시 경에 이미 남대문에 화재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TV를 시청할 환경도 아니었고 설마 그런 남대문 본체에 불이난 것이라 생각치는 않았습니다. 그저 주변 잔디나 나무 같은 거겠거니 했죠. 수원 화성의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집에 와보니 어머님이 난리셨습니다. 이야기 들었냐? 남대문 불나서 무너진 거. 그렇습니다. 이로써 저는 그 순간을 놓쳤습니다. 많은 분들이 이 사건에 대해 분노하고, 우울해 하시고 하던데 저도 약간 우울한 감은 들더군요. 그렇게 아름답던 숭례문이 한 순간 무너지다니. 그리고 또 이런 후회가 들었습니다. 내가 왜 숭례문 화재 소식을 듣고 그 현장에 가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그 순간을 놓친 것이 안타깝고 우울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반대로 저는 이 순간 살아있기 때문에 무너진 숭례문을 보고 그것이 다시 원래 모습을 찾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손자던 손녀던 이야기 해주면 믿지 않을 겁니다. 그렇게 문화재가 잘 보호되고 있는 요즘인데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냐고, 할아버지 뻥치지 말라고. 그럴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안좋은 시기? 언제나 안좋을 수 있죠. 현실은 언제나 좋지 않고. 뻥 같은 일이 일어납니다. 이번 일도 그런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봅시다. 지금 이 순간 저는 남대문이 무너지는 모습을 못 봐서 안타깝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그것이 좋은 것이던 나쁜 것이던, 그런 순간을 놓쳤죠. 그 모습을 볼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소 제 호기심이라면 당장 달려갔을터인데 그것을 포기한 건 제 선택이었습니다. 착오였고요. 하지만 대신 저는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이들이 숭례문이 원래 모습이 될 수 있도록 고생하고 노력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그리고 그것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저는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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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우울합니다. 그 순간을 놓쳐서요.
하지만 기쁩니다. 지금 이 순간 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좋은 방향으로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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