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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야기

한국에는 있는 것, 일본에는 없는 것. 유통기한과 賞味期限

한국에는 있는 것, 일본에는 있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별건 아니겠지만 한국 담배에는 유통기한이 명시되어 있지 않고 일본 담배에는 유통기한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elofwind님의 블로그에 올라온 賞味期間/상미기간에 있는 사진을 보면 H17.4(헤이세이 17년 4월 / 서기 2005년)이라 써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담배에는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아니 정확하게는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생산일자'와 유통가능한 기간을 표시해서 소비자가 그것을 보고 계산하도록 표시되어 있었지만, 여러 불합리한 점이 있는 바 변경되었습니다.

일본의 경우에는 식품이 보존 가능한 기한을 期限表示(きげんひょうじ:kigenhyouji-기한표시)라 하여 정의하고 있으며 WTO 협정에 의해 1995년부터 도입해서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여기에 두 가지 용어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는 消費期限(しょうひきげん:shouhikigen/소비기한)과 賞味期限(しょうみきげん:shoumikigen/상미기한)입니다. 비슷한 듯 하나 두 가지 용어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구분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식품의 신선도가 중요하여 그 기간이 짧은 경우 소비기한, 그에 해당하지 않을 경우 상미기한이라고 정의합니다. 그 기준은 5일 이내인 것이 소비기한. 5일을 초과하는 것이 상미기한입니다. 상미기한과 비슷한 의미로 品質保持期限(ひんしつほじきげん:hinshitsuhojikigen/품질유지기한)을 썼으나 2003년에 상미기한으로 통일되었습니다. 2005년 7월까지 유예기간으로 종래 표시를 허용한다고 하니 품질유지기한으로 표시된 식품도 있을 것입니다.

논점은 무언고 하니, 상미기한은 우리말에는 없는 말입니다. 유사어로 유통기한이 있습니다만, 소비기한/상미기한과 유통기한의 차이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언어적인 차이.

일본어에서는 한정된 기간이란 의미로 期限(きげん:kigen/기한)이라 하고 있고, 한국어에서는 단순하게 기간이라 쓰고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과 일본의 언어적 차이도 있습니다만, 본디 유통기간이란 것이 생산일자부터 얼마 동안 유통 가능한 기간인가에서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만, 예전에 빵을 보면 1990.8.25. 이라고 스탬프로 찍혀있는 생산일자와 봉지 구석에는 며칠 동안 유통 가능한지 날짜가 적혀있었습니다. 다만 소비자가 이 두 가지를 보아야만 확인이 가능하므로 이것은 지금의 형태로 변경된 것입니다. 그래서 기간입니다.


첫번째 이유는 틀렸습니다. 법률 조항을 잘못 해석하고 쓴 것으로 유통기간은 생산일로부터 유통가능한 기간을 의미하며 유통기한은 생산일+유통기간으로써 언제까지 유통가능하고 사용가능한가를 의미합니다.

두번째는 법률적 차이입니다.

한국에서는 식품과 의약품을 식품의약품안정청(KFDA)에서 모두 관리하고 있으며 그 식품과 의약품의 본래 품질이 변화되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기한을 '유통기한'으로 보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좀 더 자세한 것은 식품위생법과 관련 법안을 참조해주시길 바랍니다. 즉, 식품과 의약품을 모두 통틀어서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런 용어로 정립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법률은 정확하게 모르겠으나, 여기에 차이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상미기한은 JSA법에 의해 정의되고 있다고 하는데, 법률정보 검색까지 할 여력이 없어서 포기했습니다.

賞味期限을 상미기한이라 해야할 것인가, 유통기한이라 해야할 것인가를 놓고 보면 이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번역에 있어서 원어와 원어의 문화적 기반을 잘 모르더라도 그 말을 이해하기 쉽도록 해야한다는 원칙 하에서는 유통기한이 옳다고 봅니다. 다음 기회에 번역을 함에 있어서 중요하게 여기는 원칙을 다시 한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듯 하니 여기에서는 이 정도로 일본어와 한국어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 짓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담배 이야기로 돌아와서.

담배에 대해 유통기한을 써놓는 일본은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CABIN의 수출판(CABIN International)의 경우 유통기한이 없습니다. 한국도 없습니다. 유럽(Davidoff Light 참조)도 중국(中南海 케이스 참조)도 없습니다. 미국은 제 서랍에 미국산 담배 케이스가 없어서 모르겠습니다. 유일하게 제가 자료를 갖고 있는 안에서는 일본 담배만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특이한 케이스라고 봐야하는 건지, 그 만큼 일본인은 기한에 철저하다는 건지, 아니면 담배같이 변질 가능성이 극도로 낮은 제품에 고작 1년 정도의 유통기한을 잡는 일본인은 그 만큼 담배를 사랑하는 것인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상미기한은 품질유지가 충분히 가능한 기한을 말하는 것이며 품질이란 손상, 열화되지 않은 상태를 의미합니다. 향이나 맛까지 보장하는 것은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賞味(しょうみ:shoumi)란 말자체는 맛을 느끼며 먹는다는 뜻입니다만, 법률 용어에서는 그런 의미는 이미 없는 것이겠죠.

좋게 보면 elofwind님이 말한 것처럼, 상미기한을 잡은 것은 그 품질을 보장한다는 의미가 되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의미로 해석하면 담배를 1년의 유통기한으로 잡고 그 뒤의 품질에 대해서는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됩니다. 즉, 담배의 특성상 빠른 시간 내에 유통, 소비되고 저장되지 않기 때문에 기간을 짧게 잡고 그에 대해서 책임 회피를 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길 책임 질 줄 아는 일본인의 성격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겠죠. 나쁜 의미로 말하면 책임을 회피하는 일본인이기도 합니다만. 포스트의 주제와 너무 벗어나는 듯 해서 이 정도에서 마무리 짓겠습니다.

어찌되었던 담배에 조차 유통기한을 잡고 있는 일본은 흡연자인 제게는 부럽기도 합니다. 많이 다녀오진 않았지만, 일본을 가서 돌아다닐 때 느끼는 점은 담배를 즐기기 좋은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수 없이 설치된 재털이. 쓰레기통은 없어도 재털이는 꼭 있습니다. 어떤 건물, 어떤 공간에 가도 흡연 구역은 있습니다. 물론 환경 시설도 충분히 잘 되어 있고. 금연구역 뿐 아니라 흡연 구역에 대한 배려가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작년 7월 1일부터 건물의 금연구역과 흡연구역을 나누어 놓도록 법으로 정하고 있으나, 흡연구역은 필수사항이 아닙니다. 흡연구역을 설치하기 위해서 드는 비용을 피하기 위해 많은 건물주, 그리고 공공기관 역시 전구역 금연을 설정하고 있습니다.

혐연자 분들이 보기에는 이것은 무척 합당한 처사로 보이겠지만, 충분한 세금을 지불하고 구입해서 피우는 흡연자들에게는 무척 합당하지 않습니다. 저는 세금을 내는 만큼의 권리를 찾고 싶을 뿐입니다.

유통기한이 설정되어 있는 일본의 담배 이야기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왔군요. 일본어를 한국어로 번역할 때 또는 그 반대일 때의 가이드라인, 법률적 차이, 그리고 담배 문화의 차이. 기회가 닿는다면 각각 주제에 대해서 더 자세히 언급하도록 하고 이것으로 마칩니다.

어쨌든 한국어엔 상미기한이란 말은 없다! elofw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