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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이야기/노동과 임금

병역특례를 가장해 병역기피를 노리나?

정부는 14일 황당한 발표를 했습니다. 지식서비스라는 명목으로 금융, 컨설팅, 교육, 광고, 유통, 의료 등의 부문에 대해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을 배정하기로 한 것입니다.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이란 대학교 석사 이상의 인력이 3년 간 근무할 경우 병역을 끝낸 것으로 하는 특례 제도로써 지금까지는 산업, 기술 분야에만 국한되어 적용되던 제도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지금까지 분야와는 전혀 다른 부문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은행·백화점 등 지식서비스 기업연구소 내년 11월부터 병역특례

(전략)

내년 11월부터 지식서비스 기업연구소에서 3년간 일하면서 병역을 대체하는 병역특례 전문연구요원(석사급 이상)을 배정하기로 한 점이다. 정부는 오는 6월 산업발전법을 바꿔 관련 근거를 마련하기로 했다. 지식서비스는 금융, 컨설팅, 교육, 광고, 유통, 의료 등의 분야를 말한다.

(후략)

우선 병역특례는 인력을 구하기 힘들고 기피하는 연구소에서 연구원을 구하기 위해 진행하는 제도입니다. IT 분야에서도 많은 수가 할당되어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현역병에 해당하는 인력이 점점 줄어 들어 병역특례를 필요로 하는 업체에서도 그 수를 구하기 힘든 상태입니다.

2008년 병역특례를 배정 받은 산업체 현황을 보면, 주로 토목, 건축, 실내 인테리어를 비롯하여 설계, 기계, 조선 등의 산업 부문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의 IT 및 기술 부문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총 4,033명의 현역병과 7,141명의 보충역으로 11,174명이 신규로 배정된 상태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부문, 그것도 지식 서비스란 이름으로 포장한 유망 업종에 적용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간단합니다. 병역특례를 가장하여 병역기피를 노리기 위함입니다.

지금까지도 병역특례는 합법적인 병역기피의 좋은 수단으로 활용되었습니다. 제가 직장 생활을 한 기간  동안에도 많이 보았습니다. 3년 동안 근무하고 기간이 끝나자마자 회사를 그만두고 유학 가서 전혀 다른 일을 하는 사람. 역시 마찬가지로 3년 기간 끝나고 증권회사로 옮긴 사람. 숱하게 보아왔습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전문연구요원으로 일했던 업종에서 꾸준히 일하는 사람도 보았습니다만.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하였다가 부실 복무하여 재입대한 싸이의 경우를 들지 않더라도, 이와 같이 병역기피를 목적으로 병역특례를 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했습니다.

이를 생각해보면 간단합니다. 이와 같이 유망 업종에 병역 특례를 확대하는 것은 월급 받으면서 3년 동안 병역특례하는 것도 아까우니, 원래 일하려는 업종에서 일하려고 하는 속셈입니다. 그 동안은 병역비리를 통해 면제를 손쉽게 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것은 힘들어졌습니다. 이회창의 아들에 대한 병역비리 의혹 이후 수 많은 브로커의 검거로 인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합법의 탈을 쓰고 병역을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병역특례를 활용하자는 속셈입니다. 그것도 다른 업종으로 일해야 하기 때문에 받는 경력상의 손해(?)를 줄이기 위해 유망 업종에까지 확대하는 것이죠.

이와 같은 엉뚱한 병역특례 확대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닙니다.

문화부, 비 등 한류스타 병역면제 추진

(전략)

문화부는 최근 한류스타들에게 병역특례를 부여해 군복무로 인한 공백기 없이 지속적으로 활동하면서 국위선양을 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내부 방침을 세우고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병역특례 조항의 신설을 꾀하고 있다.

문화부의 이러한 입장은 유인촌 문화부 장관의 의지가 강하게 반영된 것. 유 장관은 올해 문화부 장관으로 취임하기 이전부터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병역특례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부는 18대 국회에서 한류스타의 병역특례 사항 등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방안을 세웠다.

(후략)

자기 돈 벌려고 나서는 연예인에게 병역특례를 주자는 방안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문화관광부의 유인촌  장관이 이미 시도했던 것 중 하나입니다.

이와 같이 병역특례를 국위선양과 산업 육성이 아니라 다른 분야로 확대하려는 시도의 목적은 명백합니다. 병역특례를 통해 합법적으로 병역을 기피하면서, 경력 상의 어떠한 손해조차 보지 않겠다는 의도입니다.

금융, 컨설팅, 교육, 광고, 유통, 의료 등의 분야는 인력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2년의 공백이 안타까우니 그것을 병역 특례로 메우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존의 병역 특례 배정을 더 나누어 필요한 산업에서조차 빼앗아 넘길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빼앗은 자리는 병역 기피를 위해 몰려든 이들이 차지할 게 뻔합니다.

저는 병역 특례가 한시적으로 기피 산업에 필요했다고 봅니다. 산업 육성을 위해 인력을 저렴한 가격에 기업에 제공해줄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병역 특례로 인해 그 업종에서 장기간 종사하는 인력에게는 평균 임금의 저하라는 악순환만 왔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제 현역병조차 모자라는 시점입니다. 그런 시점에서 연간 1만 명, 3년 기준으로 3만 명이 넘는 병역 특례는 도가 넘칩니다.

병역특례는 그런 의미에서 없어져야 합니다. 산업의 육성과 그 종사자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그리고 이처럼 병역 기피를 위한 기반 마련에 악용되지 않도록 폐지 되야 마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