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자주 인용하는 글 중 하나인 마르틴 니묄러의 시가 있습니다. 많이들 읽어 보셨죠? 이 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겠습니다만, 2차 세계 대전 후 니묄러슨 이것을 여러 용도로 사용하며 선동에 씁니다.
"네가 지금 함께 일어나지 않으면 너가 당할 것이다!"라는 뜻으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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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그 시를 현재 우리 상황, 특히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의 입장으로 빗대어 처음엔 카페, 다음은 아고라, 그리고 블로거를 숙청한다.라는 글을 썼습니다. 그 글에서 저는 이 시를 바탕으로 몇 개 단어를 바꾸어 자유를 부르짓는 시를 썼습니다. 그런데, 블로그를 보다 보니 어느 선동글이라고 하며, 어딘가 인터넷에서 떠도는 시(?)를 인용한 글을 보았습니다.
2mb는 우선 비정규직을 핍박했다.
나는 비정규직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민노당을 핍박했다
나는 그 어느 당원도 아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엔 방송과 언론인을 핍박했다.
나는 방송인도 언론인도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노동조합원을 핍박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불교신자를 핍박했다.
나는 개신교도였으므로 침묵했다.
2mb는 우선 건강보험을 민영화 시켰다.
나는 건강했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뉴라이트를 지원했다.
나는 알지 못하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수돗물을 민영화 시켰다.
나는 알지 못하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대운하를 파기 시작했다.
나는 알지 못하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복지예산을 삭감했다.
나는 알지 못하기에 침묵했다.
그 다음에는 사학을 지원했다,
등록금이 천만원이 넘었지만 나는 대학생이 아니므로 침묵했다.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나는 비정규직이 되었고, 나는 노동조합원이 되었고, .
나는 줄어든 복지예산에 절망했고 올라간 물가에 고통스러워 했다,
나의 자식은 등록금을 내지 못했고 나의 노모는 아파도 병원비가 무서워 치료를 받지 못했다.
독도는 다케시마가 되었고 수돗물세는 폭등했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를 위해 나서 줄 사람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 역시 ...
내가 그랬던것 처럼 그들역시 무지했고.
내가 그랬던것 처럼 침묵했기 때문이다.- 마르틴 양양이-
참으로 암담하더군요. 원문의 간결한 구조. 단 다섯문장으로 이루어지며 기승전결을 이루는 구조를 무너뜨리고 더불어 쓸데없는 주석까지 덕지덕지 붙어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독자의 자유를 망가뜨린 이상한 글이 되어있었습니다. 더 이상 원문이 가지고 있는 간결함도 없고 심지어 원문이 가지고 있는 선동의 효과조차 잃어버린 어이없는 글이 되고 말았습니다. 암담하더군요. 각 문구의 사실 여부나 그런 것과 무관하게 글로써 빵점입니다. 그러다보니 마나™님은 그 글에서 "몇 개는 2mb를 노무현으로 바꿔도 말이 되는"이라면서 "원작을 조져먹은 수준 이하의 선동글인지 잘 보여준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저 역시 동감입니다. 시에서의 간결함과 비유는 중요합니다. .특히 원문이 제3제국 나치스의 핍박을 다룬 시란 점에서 이 시는 존중 받아야 마땅하며, 재해석하거나 인용하여 사용한다면 글에 대한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봅니다. 저는 처음엔 카페, 다음은 아고라, 그리고 블로거를 숙청한다.에서 2차 세계 대전의 '그들'과 2009년의 '그들'을 빗대어 시를 바꿔 쓴 것이 있습니다.
이명박은 우선 대책회의를 숙청했다.
나는 대책회의가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카페장을 숙청했다. 나는 카페가입자가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사노련을 숙청했다. 나는 사노련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아고라를 숙청했다. 나는 아고리언이 아니었으므로 침묵했다.
그 다음엔 나에게 왔다. 그 순간에 이르자, 나서줄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았다.- 한국의 좌빨 블로거 南無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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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회의의 구속영장 발부. 불매운동 카페장의 구속. 사회주의노동자연합의 체포. 그리고 아고라에서 활동하는 논객의 구속. 이어지는 탄압에 이제 다음은 블로거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급하게 쓴 글이지만, 최소한 지킬 것은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가 글 재주가 뛰어나진 않은지라 글이 그리 매끄럽진 않습니다. 지금 보니 몇군데 고치고 싶지만, 이미 흘러나간 글이라 굳이 고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을 뿐입니다. 어떻습니까? 앞서의 줄줄 흐르는 선동글과 제가 쓴 선동시. 비교하면 다르다 느끼지 않습니까?
자신의 의견을 어필하고 환기하기 위해 원전을 인용하고 재해석, 패러디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 역시 또 하나의 창작이라 생각하고요. 저 역시 저런 문구를 생각하면서, 최대한 원문의 느낌을 살리려 노력했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글이 나도는 걸 보니 가슴이 아픕니다. 시민들에게 경고를 주고 관심을 끄는 것도 좋지만, 원문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은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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