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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이야기/국가보안법

박정근 사건 일지, 9월 21일 압수수색부터 판결까지

박정근은 2011년 9월 21일 압수수색부터 2012년 11월 21일 판결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수사와 공판을 거치게 됩니다. 한 청년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어떤 억압을 받게 되는가, 그것을 사건을 중심으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박정근 범죄사실의 요지

피의자는 2010. 3. 21. 트위터에 'seouldecadence' 라는 아이디로 계정을 개설하여 북한 조평통에서 체제 선전,선동을 위하여 운영하는 우리민족끼리사이트, 트위터, 유튜브 등에 접속 이적표현물 384건을 취득,반포하고, 북한 주의,주장에 동조하는 글 200건을 작성 팔로워들에게 반포하였으며,학습을 위하여 이적표현물인 북한 원전 '사회주의문화건설리론'을 취득 보관함.

2011년 압수수색과 보안수사대 조사

9월 21일: 10시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박정근 자택 및 조광사진관 압수수색

당시 @seouldecadence의 트윗 내용

-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 잘 들으시길 바랍니다. 저는 지금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가게와 집이 압수수색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잠시 피시방으로 나왔고 가게 하드는 현재 복사중 입니다. 제방에 있는 몇몇 자료들은 압수되었습니다. 핸드폰도 압수되었습니다.
- 당신들의 어린이날 자료집 가져간 거랑, 유채림이 개업식 날에 준 돈 들어있던 축하의 글이 써진 편지봉투 압수해간 게 너무 속상하다. 그보다 더 속상한 건 내일 당장 사진 찍어야 할 메모리 카드를 모두 압수해 간 거다.
- '북'이라고 써있는 씨디는 몽땅 가져갔다.
- 그리고 제일 웃긴 건 내 방에 경찰이 와서 유심히 보고 간 게 뭐냐면... '북'촌 방향 플라이어...
- 사실 아까 전까지 조사받으면 어떻게 말해야 하나 그런 걸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박정근들 그리고 다른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조사는 일이 잔뜩 밀려서 내일이 아니라 다음 주 화요일에 경기지방경찰청에서 합니다.
- 따져보면 난 늘 소수였다.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사실상 불안정노동자인 자영업자다. 철거민이었다. 장애인이다. 이 모든 걸 국가보안법 위반, 찬양고무라는 이름이 적힌 딱지로 가려주셨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라.

10월: 불면 호소, 급성 스트레스 장애 진단
11월 15일: 5차에 걸친 보안수사대 조사

갑작스런 보안수사대의 자택과 가게 수사. 한 사진가는 국가보안법의 마수에 고통 받기 시작합니다. 압수 수색 이후 11월 15일까지 5차에 걸친 조사를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에서 조사를 받고 그 동안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2012년 구속과 보석

1월 11일 11시: 검찰 박정근 구속영장 신청
1월 11일 19시: 박정근 구속, 국가보안법 7조 1항, 5항
1월 13일: 경찰 추가 조사, 6차에 걸친 조사 완료
1월 18일: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수원구치소 이감
1월 20일: 수원지방법원 박정근 구속적부심사 – 기각
1월 25일 : 박정근 2차 검찰조사
1월 27일 : 박정근 3차 검찰조사
1월 30일 : 박정근 4차 검찰조사
1월 31일 : 박정근 검찰 기소 
2월 15일 : 박정근 보석석방 신청
2월 20일 : 박정근 보석석방 결정 (보석금 1,000만원)

그리고 검찰은 박정근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합니다. 도주 우려가 없고 증거 인멸 가능성이 없음에도 무리한 구속 영장. 저도 누구도 구속 영장을 법원이 받아들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장은 통과됩니다. 구속적부심사도 기각됩니다. 결국 약 2개월 동안 박정근은 구속되고 보석으로 석방되게 됩니다. 보석금 역시 통상보다 꽤 높은 1천 만원. 5~700만원을 예상하고 준비하고 있었으나 300만원이 더 필요하여 그날 갑자기 금액을 더 모금해야만 했습니다. 주변 지인들이 급작스럽게 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7차에 걸친 지루한 공판

3월 9일: 1차 공판 검사 김용제
4월 18일: 2차 공판 검사 이원모
5월 16일: 3차 공판 검사 이원모
6월 20일: 4차 공판 검사 이원모
7월 18일: 5차 공판 검사 박석민
9월 5일: 6차 공판 검사 이원모
10월 10일: 7차 공판 검사 최청호

이어서 3월부터 10월까지 7차에 걸친 지루한 공방이 시작됩니다. 도중 주 담당 검사도 교체되는 해프닝까지 펼치며, 8개월 동안 매달 공판이 열리게 됩니다. 박정근의 변호인, 이광철 이민석 변호사 역시 사안을 어처구니 없어하며 검찰의 기소 내용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박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의도가 명백할 때 처벌할 수 있으나, 박정근은 북한을 비판하고 비웃으려는 의도가 명백하다”며 또한 “국가보안법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박정근의 의도와 표현의 자유를 놓고 변론합니다.

그리고 박정근은 몇 개의 글을 남깁니다. 아래는 그 중에서 제가 일부만 발췌, 요약한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 각하께 보내는 공개서한

“한 젊은이가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고자 하는데, 국가가 그 길을 막는다면 국가는 젊은이에게 영원한 빚을 지는 것입니다.”

2012. 1. 16 수원남부경찰서유치장에서 사진가 박정근 드림

연습삼아 쓴 최후변론서

존경하는 재판관.

첫째로 2011년 9월 21일 저의 생업현장과, 자택에서 벌어진 압수수색의 무리함에 대하여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로 retweet과 단순 자료공유가 이적행위가 될 수는 없습니다. 리트윗이 동의의 의미만은 아닌 것입니다.

셋째로 나는 내 행위의 정당성에 대해서 설명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로, 북한은 반국가단체가 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사형제 폐지 논쟁이 뜨거운 나라 대한민국에서 국가보안법은 사형이라는 단어가 여덟번 등장하는 전 근대적인 법입니다. 보편적 인권, 사상, 양심의 자유 측면에서 이 법에 반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2012. 2. 5 박정근

박정근 최후진술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서점에서도 파는 베스트셀러를 압수해가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컴퓨터와 인터넷을 영장에 “김정일이 총보다 더 위력이 강하다고 말했던 새로운 혁명도구”로 둔갑시키는 기관들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해하고 국가관을 혼란스럽게 여기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경찰조사 마지막에 그간 해왔던 표현들을 다시 또 할 것이냐는 조사관의 물음에 앞으로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런 글들을 들고 제가 북한에 간다고 해서 환영을 받을 수 있는 몸인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라도 사람 취급을 해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유죄 판결, 징역 10월 집행유예 2년

11월 21일: 선고 공판 검사 최청호, 판사 신진우
11월 22일: 변호인 이민석 항소장 제출

긴 여정을 거쳐 압수수색으로부터 1년 3개월. 유죄로 판결을 받았습니다. 검찰은 2년을 구형하였고 징역 10월을 선고 받습니다. 다행히(?) 초범이라고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습니다.

사건: 2012고단324 국가보안법 위반(찬양, 고무 등)
피고: 박정근
검사: 문현철(기소), 차범준(공판)
변호: 이광철, 이민석

판결문에 따르면 박정근과 변호인이 주장한 “국가보안법은 헌법에 위배되고, 북한은 반국가단체가 아니다” “트위터 게시물은 ‘물건’이 아니므로 국가보안법이 정한 ‘표현물’이 아니다” “피고는 북한 체제에 대해 비판적으로 대하였으나, 단지 그 내용이 북한의 주장과 동일 또는 유사하다고 국가의 존립, 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 등의 변호인이 주장한 요지가 판결에서는 인정되지 않았습니다.

판결에 따르면 이적행위의 목적이 있었다는 점을 검사가 증명하여야 하고 그에 대한 직접 증거가 없다는 것까지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적 목적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자의적인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트위터가 개인적인 성격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공개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접근이 있을 수 있으므로 표현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전반적으로 비판적이란 것을 인정하면서도 일부를 보고 박정근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수 있으므로 이적행위에 해당한다고 판결 내렸습니다.

정리하자면, 아무리 비판적이라고 하더라도 이적행위로 오인될 수 있는 일부 내용을 갖고 충분히 국가보안법 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이 판결에 따르면 여기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들 많을 겁니다. 물론 저 역시 거기서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실제로 박정근의 범죄 일람표 중의 일부에는 제가 쓴 트윗을 리트윗한 것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구요? 바로 인터내셔널가입니다.

이번 박정근의 국가보안법 위반에 대한 판결은 아무리 북한 체제에 비판적이라 하더라도 이적목적으로 ‘오인’될 수 있는 몇 개의 트윗만으로도 국가보안법 위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린 판결입니다. 광범위하고 매우 위험한 표현의 자유의 위협입니다.

사회당과 진보신당의 논평, 하지만…

박정근이 당원으로 있던 사회당, 그리고 현재 당원인 진보신당연대회의는 당원의 국가보안법 수사, 구속, 공판, 판결에 대해서 논평을 냈습니다.

사회당 논평

박정근 당원에 대한 터무니없는 국가보안법 수사를 중단하라
내일 박정근 당원 국가보안법 위반 경찰 조사에 대해
국가보안법 피해자 박정근 당원 구속영장 실질심사, 법원의 보편타당한 정의를 기대한다
박정근 당원 구속, 우리 사회를 통제와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국가보안법을 즉각 철폐하라
국가보안법 피해자 박정근 구속적부심 기각한 법원을 강력하게 규탄한다
90초공감 13편: fix you, 박정근
박정근 당원을 석방하고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라
박정근 당원의 즉각적인 보석 석방을 촉구한다
박정근 당원의 보석 석방을 환영한다

진보신당연대의회 논평

'우리민족끼리' 리트윗해 구속된 박정근 씨, 해외토픽감이다
국가보안법 피해자 박정근 당원 첫 공판, 공명정대한 판결을 기대한다
트위터 국보법 피해자 박정근 당원 집유 2년 선고, 국가보안법 철폐의 이유 보여준다 -공안검사는 일거리 없으면 그냥 놀아라

그러나 박정근이 당원인 사회당과 진보신당연대회의는 공판에 공식적으로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박정근이 당 대표에게 참관을 요청하였지만 대표는 참관하지 않았습니다.

홍세화 대표님께 작은 박정근이 올림.

매체에 보도되는 내용에 대해서도 일부 잘못된 점이 있어 당이 직접 수정 요청하길 바랬지만 그렇게 되지 않고, 결국 제가 직접 기자에게 요청한 바가 있습니다만, 중요한 내용이 아니라 하여 무시 당한 적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논평은 꾸준히 나오더군요. 많이 속상했습니다. 당원이 국가보안법에 의해 탄압을 당하는데 이렇게 모른 척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이런 일을 겪을 때 당은 나를 논평의 대상으로 밖에 삼지 않겠구나. 그런 마음이 드니 우울합니다.

항소를 결정하였는데 2심에도 그러할까요? 진보신당연대회의에서 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