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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이야기/강남성모병원

크리스마스 명동성당 앞에서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과 함께

크리스마스 이브의 강남성모병원 앞 투쟁 100일 문화제에 이어 오늘은 명동 성당 앞으로 왔습니다. 명동 성당 앞에서 10시에 기자회견이 있었지만 아침에 일어나 블로깅을 하고 오니 지각하고 말았습니다.

2008/12/25 - 크리스마스 이브에 외치는 100번째 "Be정규직"

명동성당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글을 썼으면 좋았을텐데, 집에서 다 쓰고 나오느랴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이미 기자회견은 끝나고, 명동성당 앞 길목에서 전단지를 나눠주며 조합원 분들이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하며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비정규직 보호법. 보호법이란 이름이 아니라 비정규직을 괴롭히는 악랄한 법일 뿐입니다. 고용안정이 아니라 2년 안에 해고하도록 기업에게 권하고 있는 꼴이라니.

말씀을 하시던 도중 감정에 북 받혔는지 울먹이며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 오늘드릴 간절한 기도 제목에
카톨릭 재단 강남성모병원에서 일하다 해고된
저희 노동자들을 위한 기도도 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저도 부탁 드립니다. 오늘은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투쟁이 시작한지 100일째입니다. 이 분들이 꼭 승리하실 수 있도록 기도해 주세요.

비정규직 철폐를 주장하는 패널을 명동성당을 찾는 시민이 관심을 갖고 보며 지나갑니다.

하지만 도중 불상사도 있었습니다. 성당 관계자로 보이는 몇 명이 나타나 윽박지릅니다.

"왜 이런 좋은 날 정치적인 행동을 하는가?"

황당합니다. 조합원 분들은 울먹이며 항의하였습니다. 그제서야 별 말 없이 사라집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이런 좋은 날 왜 길거리에 나와서 이렇게 외쳐야만 하는 것이겠습니까? 왜 이러는지 모르셔서 그러는 건 아닐 텐데, 같은 카톨릭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시는 건 보기 좋지 않았습니다.

크리스마스 아침이라 명동 성당에는 많은 신도들이 미사를 드리러 향하고 있었고 조합원과 함께 하는 시민들이 나누어주는 전단지를 흔쾌히 받아가셔서 나눠드리느라 정신 없었습니다. 몇몇 분들이 "이런 좋은 날 뭐 하는 짓이냐?" 라며 지나가긴 했지만 대부분 반응은 좋은 편이었습니다. 어떻게 카톨릭 안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냐며 울분을 터뜨리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강남성모병원의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 투쟁 상황이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카톨릭 신도 여러분이 이 현실을 알고 가만 있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성당까지 올라가 사진을 찍고 내려오는데, 한 동지가 오더니 제게 전단지를 주더군요. 저보고도 나누라고. 전 이런 거 잘 못 하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자 전단지를 나누었습니다. 별로 거부감 없이 받아가시면서 호응도 좋았습니다.

12시 경이 되자 이영미 조합원이 모두 모이자는 한 말씀. 오늘 수고하였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명동성당 아래 골목의 한 굴국밥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자리에 앉자 마자 노트북을 가진 이들은 모두 기계를 꺼내는군요. 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제가 앉은 테이블 옆에 콘센트가 있었지만 콘센트는 2개. 노트북은 3개. 서로 자기 거를 충전한다고 하였지만 빠른 자의 승리. 저는 간발의 차이로 졌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조합원 분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식당을 나서 모두 헤어진 다음에도 조합원 분들은 앞으로 방향에 대해 어찌할지 논의하러 모여서 가셨습니다. 저도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와서 잠깐 누워 자다가 이제야 오늘 명동성당 앞 이야기를 글로 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기자회견에는 참석을 못 해서 사진을 찍으신 분에게 좀 복사해달라고 부탁하였는데, 식사 후 바로 잠들어 버리고 그 김에 저도 깜빡하여 기자회견 장면이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깜짝 에피소드. 마이크를 잡고 외치는 도중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가 명동성당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단지를 드리며 말씀을 부탁 드리자,

"잘 되었으면 바랍니다."

라는 두리뭉실한 대답. 어떻게 되는 게 잘 되는 건지. 식사하면서 그 이야기를 들으며 웃음 꽃(?)이 활짝 폈습니다.

오늘 명동성당 앞 행사는 이렇게 조용히 끝났습니다. 헤어질 때 조합원 분께서 "다음에도 오실 거죠?" 하시는데, 제가 하는 일도 별로 없건만 "예"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고저 제가 하는 거라곤 사진 찍어 글 쓰는 정도이지, 정작 중요한 상황엔 자리에 없을 때가 많았으니 죄송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