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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이야기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입니다.

Tracked from 외국어와 번역물의 미묘한 관계 in [불포화인간산]

흔히들 손쉽게 번역의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만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번역은 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번역은, 기술과 창작의 만남입니다.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입니다.

제가 일본어를 처음 배우기 시작할 때, 그리고 지금도, 흔히들 일본어는 쉽다라고 말합니다. 영어보다는 쉽다, 중국어보다는 쉽다, 라던가 말이죠. 하지만 쉬운 외국어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모국어로써 배우는 것을 제외하고 모든 외국어는 어렵습니다.

어순이 같으니까 같은 한자를 쓰니까, 라고 일본어가 쉽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일본어를 배울 수 있으면 모든 한국인은 일본어를 조금만 배워도 쉬울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쓰는 것은 한자이고, 일본에서 쓰는 것은 칸지입니다. 두 개가 같은 것이 아닙니다. 또한, 어순이 같은 것으로 따지면 한국어와 같이 주어+형용어+서술어 관계의 언어는 세상에 널렸습니다. 주어+서술어+형용어 관계의 어순을 같인 영어, 중국어는 그런 관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일본어, 한국어에서도 어순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배우기 쉬운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말도 안되는 루머가 널리 퍼져있고, 그것에 속아서 일본어를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저도 처음에 이 루머에 속아서 시작한 사람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것은 거짓말이고, 일본어는 외국어로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어느 순간까지 깨닫지 못 하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래서 기술적으로 일본어를 어느 정도 이해한 순간, 일본어를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이라는 또 하나의 창작을 기술적으로만 보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외국어가 기술적인 부분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저 외우거나, 그저 익히기만 하면 그만이니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외국어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이기 때문에 기술로써 끝나지 않습니다. 그 언어는 하나의 문화이자 체계이며, 하나의 기술이기도 합니다. 문화와 기술이 만났기 때문에 모든 외국어는 어려운 것입니다.

흔히들 외국어 번역물을 놓고, 기술의 잘못됨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런 기술의 잘못됨을 말하기는 쉽습니다. 그러나, 그 번역의 문화의 잘못됨을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외국어의 문화를 잘 이해하고, 또한 그러면서 원 창작자의 의도를 잘 이해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고 있다 하더라도 그런 말을 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그것을 다른 이들이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쉽게 말하더라도 말이죠.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외국어의 문화를 이해한 사람들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놓고 많은 사람들이 문제 제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 제제기의 대부분은 기술입니다. 이것은 이 단어가 아니라 이 단어이다, 이 표현은 이 표현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기술을 갖고 말합니다.

제가 일본어를 배울 때 배움에 있어 제게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이 있습니다.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시던 선생님이었습니다. 그 분은 제게 기술을 가르쳐 주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문화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아니, 정확히는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이란 무엇일까요? 지금 제가 여기서 말로 쉽게 말하자면, 그것은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이해하지 않는 이상 문화의 이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창작과 번역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외국어를 문화로써 이해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럼 다시 본 주제인 번역으로 이야기를 돌려 보겠습니다.

번역은 처음에도 말했듯이 또 하나의 창작입니다. 즉, 원 저자의 의도를 충실히 담으면서, 그가 사용한 언어의 문화를 이해해, 최종 번역물의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그 두 가지를 이해할 수 있도록 창작하는 것이 번역입니다. 기술적으로 번역하는 것은 해석일 뿐입니다. 절대 번역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그것은 창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번역을 취미로 하면서 공부를 한다면, 이것을 모두 맞추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취미는 자신만의 영역이므로, 그에 대해서 아무도 뭐라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프로의 영역으로 들어와 돈 한푼이라도 받는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 순간부터 그것은 취미가 아니라 프로이며, 그것은 프로로써 번역으로 평가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자신있게 번역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번역을 또 하나의 창작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최소한 이루려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저 기술로써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그저 돈을 벌기 위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차라리 돈을 벌기 위해, 라고 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습니다. 그 목표는 그의 개인 목표이고, 그것은 어느 정도 납득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단순 기술 해석을 용서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기술 해석만을 하면서 자신은 번역을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자신이 스스로가 어떤 경지에 달했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습니다. 반대로 달했다고 착각하기는 쉽습니다. 이것이 지금의 상황을 낳는 문제라고 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자신이 정말 그런 영역에 달했는가를 고민해 보고, 번역으로의 길을 뛰어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기술 해석에 같이 기술로써 맞대응해서, 표현을 갖고 문제 제기를 하기보다는 번역이 되지 못한 점, 번역으로써 창작이 되지 못 한점, 문화를 제대로 표현하지 못 한점, 그런 문제를 갖고 이야기해볼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된 번역은 단 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언어를 모국어로써 충분히 구사할 수 있고, 두 개의 언어로 하나의 창작물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번역은 문제점을 갖고 있고, 미흡한 것입니다. 그런 문제점이 있고 미흡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번역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