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입니다. in Studioxga.net
저번 포스트에서는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이기 때문에 단순한 기술로써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해한 상황에서 원저자의 의도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도를 번역된 언어로 읽게 되는 사람이 원 문화와 원 저자를 이해하도록 번역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에 대해서 이번 포스트에서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번 포스트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일과 관련해서 제가 작성한 문서를 일본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번역을 의뢰했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알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번역은 적절하게 번역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맡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참담했습니다. 번역이 아닌 해석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원문의 줄거리는 저 멀리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은 문장 하나 하나의 해석 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 원래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로 다시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번역한 것이 아니라 다시 쓴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쓸 때 원문을 보고 한 문장 한 문장 쓴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원래 어떤 문서를 쓰려고 했는지, 제 의도를 담아서 제 손으로 일본어로 다시 쓴 것이었습니다. 양쪽 모두 제 의도이며, 제가 쓴 것이며, 단지 다른 것은 한 쪽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을 위해, 한 쪽은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을 위해 쓴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에는 한국의 문화가, 한 쪽에는 일본의 문화가 담겨있었겠죠. 그러나, 이것도 완벽한 번역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면 저는 일본어를 모국어로 배우지 않았고, 그 만큼 잘 하지도 못 하고, 일본의 문화를 한국의 문화만큼 잘 이해하고 있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납니다. 번역이란, 쉽게 생각하면 하나의 언어로 쓰여진 글을, 다른 언어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번역은 하나의 의도가 두 개의 언어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위의 과정처럼 원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서 두 개의 언어와 문화로 표현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원 저자가 두 개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경우는 드뭅니다. 물론 이렇게 쓰시는 작가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원 저자의 글을 다른 언어로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번역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상적인 번역에 가깝게 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원 저자를 협박하여, 다른 언어를 익히게 하고, 다른 문화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이상적으로 번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자, 이제 여러 독자 여러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공동전선을 펼쳐 납치한 뒤 익히고, 알게 하여 번역을 하도록 합시다. 그럼 여러분이 원하는 가장 최선의 번역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상황은 불가능합니다. 납치는 인권을 침해하는 가장 나쁜 범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것은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원 저자가 된 느낌으로, 그가 어떤 의도로 이런 글을 썼는가, 그가 왜 이렇게 글을 썼는가, 그리고 그라면 어떻게 이 언어로 이 문화를 지닌 사람에게 자신의 의도를 펼쳤을 것인가, 그것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담아서 자신이 새롭게 글을 써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 그것은 창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번역과 그 방법의 원론에 대해서 두 번의 포스트에 걸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론에 대해 반대의 방법론도 있습니다. 철저하게 창작의 측면을 배제하고, 순수한 기술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번역의 방법론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글을 읽는 사람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은 그 중계자 역할을 할 뿐, 최대한 창작의 영역을 넘지 않는 방법론입니다. 이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지는 번역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론도 제가 생각하는 방법론과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번역의 하나의 방법으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방법론은 고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술 해석을 기본으로 하는 번역은, 제가 아니더라도, 또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프트웨어는 그것에 가장 가깝게 가고 있습니다. 수년전의 번역용 소프트웨어와 현재의 번역용 소프트웨어는 그 능력이 다릅니다. 훨씬 강력해졌고, 점점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술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번역의 방법론은 소프트웨어에 맡기고, 원 저자의 의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하는 방법론은 번역하는 사람이 맡자는 것입니다.
저번 포스트에서는 번역은 또 하나의 창작이기 때문에 단순한 기술로써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이해한 상황에서 원저자의 의도를 살려야 한다고 말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의도를 번역된 언어로 읽게 되는 사람이 원 문화와 원 저자를 이해하도록 번역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것이 가능할까? 그것에 대해서 이번 포스트에서 고민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저번 포스트에서 저는 이렇게 말한 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대로된 번역은 단 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두 개의 언어를 모국어로써 충분히 구사할 수 있고, 두 개의 언어로 하나의 창작물을 쓰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든 번역은 문제점을 갖고 있고, 미흡한 것입니다. 그런 문제점이 있고 미흡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번역을 더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습니다. 두 개의 모국어를 가지고, 두 개의 문화를 모두 이해하는 저자가, 저자가 두 개의 언어로 글을 창작할 때 그것이야 말로 완벽한 번역이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저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습니다.일과 관련해서 제가 작성한 문서를 일본어로 번역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번역을 의뢰했습니다. 일본어를 할 줄 알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번역은 적절하게 번역을 할 줄 아는 사람이 맡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은 참담했습니다. 번역이 아닌 해석으로 돌아온 것입니다. 원문의 줄거리는 저 멀리 사라지고, 남아있는 것은 문장 하나 하나의 해석 뿐이었습니다. 결국 저는 제 원래 업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일본어로 다시 썼습니다. 그렇습니다. 번역한 것이 아니라 다시 쓴 것입니다. 그렇게 다시 쓸 때 원문을 보고 한 문장 한 문장 쓴 것이 아니라, 하나하나 원래 어떤 문서를 쓰려고 했는지, 제 의도를 담아서 제 손으로 일본어로 다시 쓴 것이었습니다. 양쪽 모두 제 의도이며, 제가 쓴 것이며, 단지 다른 것은 한 쪽은 한국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을 위해, 한 쪽은 일본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을 위해 쓴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 쪽에는 한국의 문화가, 한 쪽에는 일본의 문화가 담겨있었겠죠. 그러나, 이것도 완벽한 번역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면 저는 일본어를 모국어로 배우지 않았고, 그 만큼 잘 하지도 못 하고, 일본의 문화를 한국의 문화만큼 잘 이해하고 있지 못 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제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가 드러납니다. 번역이란, 쉽게 생각하면 하나의 언어로 쓰여진 글을, 다른 언어로 바꾸는 과정입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번역은 하나의 의도가 두 개의 언어로 쓰여지는 것입니다. 위의 과정처럼 원 저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려서 두 개의 언어와 문화로 표현이 될 뿐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원 저자가 두 개의 언어로 글을 쓰는 경우는 드뭅니다. 물론 이렇게 쓰시는 작가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원 저자의 글을 다른 언어로 저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 번역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상적인 번역에 가깝게 할 수 있을까? 가장 간단한 방법은 원 저자를 협박하여, 다른 언어를 익히게 하고, 다른 문화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이게 사실 가장 간단하고, 가장 이상적으로 번역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입니다. 자, 이제 여러 독자 여러분.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를 공동전선을 펼쳐 납치한 뒤 익히고, 알게 하여 번역을 하도록 합시다. 그럼 여러분이 원하는 가장 최선의 번역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런 상황은 불가능합니다. 납치는 인권을 침해하는 가장 나쁜 범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그것은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원 저자가 된 느낌으로, 그가 어떤 의도로 이런 글을 썼는가, 그가 왜 이렇게 글을 썼는가, 그리고 그라면 어떻게 이 언어로 이 문화를 지닌 사람에게 자신의 의도를 펼쳤을 것인가, 그것을 고민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고민을 담아서 자신이 새롭게 글을 써야만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번역, 그것은 창작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번역과 그 방법의 원론에 대해서 두 번의 포스트에 걸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론에 대해 반대의 방법론도 있습니다. 철저하게 창작의 측면을 배제하고, 순수한 기술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번역의 방법론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언어와 문화에 대한 이해를 글을 읽는 사람에게 넘기는 것입니다. 번역을 하는 사람은 그 중계자 역할을 할 뿐, 최대한 창작의 영역을 넘지 않는 방법론입니다. 이것에 가장 가까운 것이 소프트웨어로 이루어지는 번역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론도 제가 생각하는 방법론과 반대되는 개념이지만, 번역의 하나의 방법으로써 충분한 가치가 있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방법론은 고르지 않았습니다. 이런 기술 해석을 기본으로 하는 번역은, 제가 아니더라도, 또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프트웨어는 그것에 가장 가깝게 가고 있습니다. 수년전의 번역용 소프트웨어와 현재의 번역용 소프트웨어는 그 능력이 다릅니다. 훨씬 강력해졌고, 점점 더 강력해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기술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번역의 방법론은 소프트웨어에 맡기고, 원 저자의 의도를 바탕으로 새롭게 창작하는 방법론은 번역하는 사람이 맡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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