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에 분노한 촛불시민, 그들은 돌을 들었다.
용산 한강로 참사 현장을 떠나 잠시 블로그에 소식을 올리기 위해 PC방에 들렸습니다. 물론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도 있지만, 현장의 정신 없는 상황과 추운 날씨 속에서 맨 손으로 차가운 키보드를 잡고 쓰다간 미칠 거 같았습니다. 그래서 현장을 떠 7시 좀 넘는 시간까지 글을 쓰고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2009/01/20 - 용산 철거민 참사 현장에 모여드는 시민들과 경찰
PC 방을 떠나 현장에 도착하니 이미 시민들은 도로를 점거하고 경찰에 맞서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촛불’이라 표현했지만 사실 그들의 손에는 촛불은 거의 들려있지 않았습니다. 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을 추모하며, 살인자 경찰과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분노가 가득했습니다.
현장에는 이미 물대포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새벽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물대포입니다. 새벽에 그렇게 살인을 저지르고서도 이렇게 강경 진압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역시 견찰이라고 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반가운 깃발. 사회당 깃발입니다. 사회당 동지와 잠깐 인사를 나눈 뒤 저는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나섰습니다.
종이에 그려진 시민들의 분노. 이제 시민들이 참아야 할 필요를 못 느끼는 것 같습니다. 견찰의 청부 살인. 그리고 이명박 정부의 살인을 더 이상 참고 볼 수 없습니다.
현장에 함께 하는 단체들. 갑작스러운 참사와 그에 이어지는 집회였음에도 많은 단체가 모였습니다. 많은 수가 모여있었으나, 경찰이 여기저기 섞여 있어 정확한 수는 파악할 수 없었습니다. 대략 4~5,000명 내외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만약 견찰과 이명박 정부에게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고 사람의 생명을 존중하려는 생각이 있다면 추모의 행렬로 모이는 시민들에게 이런 식으로 하면 안됩니다.
8시가 넘어가자 경찰은 더욱 시민들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대오를 반으로 갈라 밀어냅니다.
하지만 시민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전국철거민연합회의 구호에 맞추어 격렬히 저항했습니다.
그러나 시민의 수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경찰. 그들은 시민들을 점점 몰아내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등장한 악마의 병기.
그렇습니다. 살수차. 오늘 새벽 철거민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그 살수차를 또 꺼낸 것입니다. 사람으로써의 양심이 있고, 오늘 참사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 의식이 있다면 살수차를 또 꺼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양심도 없고 책임감도 없습니다. 그저 진압. 시민들을 탄압하고 몰아내는 것만을 목적으로 할 뿐입니다.
그리고 경고방송 이후 바로 시작되는 살수. 볼 때마다 화가 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당당하게 뿌려댑니다. 오늘 철거민들을 살해한 그 무기로 말입니다.
앞으로 다가가던 살수차에 한 시민이 덥석 눕습니다. 깜짝 놀라 외쳤습니다.
“야이 새끼들아 살수차 안 멈춰?”
살수차 주변에 안전 요원도 없습니다. 막무가내로 밀고 가려는 것을 앞에서 시민 한 분이 두드려 알려 주었습니다. 그제서야 살수차가 멈춥니다.
그리고 질질 끌고 나갑니다. 연행을 하진 않았지만, 맨 바닥에서 저렇게 질질 끌고 간다니. 사람 목숨을 파리만큼으로 아는 견찰에게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에서 멈추어 서있던 버스 기사 분이 난색을 표명하시더군요. 길은 모두 막혀 있고 도로 교통 정리는 전혀 하지 않고. 자신들이 길을 막고 서있으면서 전혀 도로 소통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버스 기사 분과 대화를 하고 시민들을 정류장 위에서 물러나게 했습니다. 그리고 버스는 정류장 보도블록을 넘어 겨우 통과. 세 대의 버스가 지나갔습니다.
잠시 뒤 경찰은 두 대의 살수차와 함께 진격을 시작합니다.
4개 정도의 중대가 함성 소리와 함께 달립니다. 그리고 그 뒤를 따르는 살수차. 이 방법으로 시민들을 계속 서울역 방면으로 밀어냅니다. 저도 따라서 뛰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갑자기 기동 중대가 인도로 뛰어들어 길을 걷던 시민들을 포위합니다. 저는 이때부터 무차별적인 연행이 시작될 줄 알았는데 확성기로 들려오는 지휘관의 목소리를 듣고 어이가 없었습니다.
“야 이놈들아! 누가 포위하래! 그냥 못 가게만 막으라고!”
지휘 체계조차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대. 이게 부대입니까? 쓰레기죠. 당나라 부대라고 부르기조차 아깝습니다. 당나라에게 미안하니까.
이 어처구니 없는 장면. 비웃을 수 밖에 없습니다.
다시 시민의 행렬을 쫓아가는 경찰을 뒤따라 저도 뛰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슬슬 카메라가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2009/01/07 - 10년 된 카메라를 바꾸었습니다.
최근 10년 된 카메라를 E-1으로 바꾸었는데, 이게 세로 그립에 스트로보까지 장착하니 약 2kg. 그 전에 쓰던 카메라는 고작 400g. 5배로 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깨에 메다, 목에 메다, 손에 들다 하면서 쫓아가려니 죽을 거 같더군요.
그러다 발견한 어처구니 없는 장면 그 첫 번째. 갑자기 메고 가던 가방에서 흰 연기가 나더군요. 정체는 분말 소화기. 분말 소화기가 터져 정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기동대는 뛰어가는 중이고, 낙오하지 말라는 소리는 사방에서 들리고. 소화기는 터져 가방 다 털고 다 쓴 소화기와 가방 챙겨서 다시 뛰더군요. 그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가 터졌습니다.
그래서 웃으면서 외쳤습니다.
“야! 빨리 안 뛰어? 그러다 잡히면 죽는다?”
정말입니다. 웃으면서 외쳤습니다. 사방 팔방에서 다른 시민들도 외치더군요.
또 뛰어가다 발견한 어처구니 없는 장면 그 두 번째. 전의경을 벽에 세워놓고 직원 경찰이 갈구고 있더군요. 거참. 그런 건 부대 돌아가서 하십시오. 사진기를 들고 시민들이 뛰어들자 도망 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민들이 다시 집결한 명동성당까지 도착했습니다. 다시 저를 반겨주는 사회당 깃발. 다들 뿔뿔이 흩어졌다가 모였더군요.
그리고 시민들은 모여서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시민이 앞에 나와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현재 사망자 이외에 실종자가 있다. 생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유가족의 동의 없이 부검하였으며,
경찰 입회가 아니면 시신을 볼 수조차 없게 하고 있다.”
“경찰은 용산경찰서에서 가까운 순천향 병원에 강제로 시신을 안치시켰다.”
그에 따라 시민들은 일어섰습니다. 순천향 병원을 향해.
하지만 경찰은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시민들의 앞을 가로막는 경찰들. 그러나 용산 참사에 분노한 시민들. 그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보도블록을 박살 내서 경찰들에게 던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투석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폭력은 나쁘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국민의 세금인 보도블록을 박살내다니.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경찰이 무슨 죄가 있냐고.
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최후의 저항 수단을 꺼내 들었다.
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지금 보도블록을 던지는 이들도 국민이다.
저는 이렇게 말할 겁니다. 경찰은 살인자다.
시민들은 분노에 가득 차 경찰들을 향해 투석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보도블록을 꺼내 깨는 사람들. 나르는 사람들.
그러한 격렬한 저항에 경찰도 조금씩 뒤로 물러섭니다. 그러나 조용히 물러서지 않습니다. 사진 가운데 보면 시민들을 향해 돌을 던지는 경찰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 투석에 제가 본 것만 해도 4명의 시민이 실려 나갔습니다. 저 역시 투석에 다리와 발을 맞았습니다만, 다행히 안전화를 신었기 때문에 큰 부상으로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그런 거 없습니다. 그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구입한 방석모, 방석복, 그리고 진압 방패를 들고 있으니까요. 이는 모두 세금입니다.
하지만, 경찰의 대열을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투석전을 할 때 저렇게 옹기 종기 모여서 붙어있다니. 그러면 방패에 튕겨 나온 돌이 옆으로 튑니다. 저런 식으로 맞서면 안됩니다.
골목 입구를 나와 앞으로 달려나가는 시민들. 저는 여기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합니다. 현장에서 전의경 대원들이 화를 못 참고 투석을 하는 장면은 여러 번 보았지만, 경찰 공무원. 그렇습니다. 직업 경찰이 나서 돌을 던지는 것을 본 것입니다.
사진에서 왼쪽에 보일라 말랑합니다만, 직업 경찰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냐고요? 직업 경찰은 워커를 경찰용으로 다른 모양을 신습니다. 일반 전의경은 군인과 똑같은 전투화를 신습니다. 물론 경찰은 그것을 기동화라 부르긴 합니다만.
그런데 의아한 점을 느끼실 겁니다. 왜 경찰들이 돌에 맞는 사진만 있는가? 제가 투석 장면을 모두 시민의 모습이 잘 안 보이는 사진을 쓴 이유는, 시민들의 초상권을 보호하고 행여나 제 사진으로 인해 이 분들이 다치길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투석전이 좋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항이 필요할 때는 손에 들 수 있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돌이던, 파이던 꽃병이던.
하지만 경찰의 반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방패를 높이 들고 따라와 시민들을 가격했습니다. 사진을 찍기 위해 뛰어 들었어야 했지만,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 도망치고 말았습니다. 앞에 방패 들고 있는 놈 보입니까? 아까 투석하던 그 놈입니다. 이 과정 중에 몇몇 시민들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들었습니다만, 제가 직접 확인하진 못 했습니다. 저 역시 몸을 사렸기 때문에.
죄송합니다.
구급차가 달려오고 다친 시민들을 후송해 갔습니다. 이후 경찰들도 더 이상 진입을 포기하고 대치. 시민들도 너무 지쳤습니다. 신용산에서 명동성당까지 강행군을 했기 때문입니다. 차가 끊길 시간이 되어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렇게 해서 7시부터 12시까지 5시간의 강행군. 실제로 4시부터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8시간 동안 쫓아 다녔더니 온 몸이 빠개질 거 같습니다. 방패와 밀고 당긴 것도 있고, 경찰의 투석에 맞은 것도 있고, 방패에 맞은 것도 있고. 하지만 이것으로 끝낼 수 없습니다. 무참하게 경찰에 의해 살해당한 철거민들. 그들을 위해 일어설 겁니다.
아니 제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일어설 겁니다. 여러분도 뜻을 함께 해 주십시오.
뜻을 함께 하는 이.
우리는 그를 동지라 부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