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주제/역사

창덕궁을 일본인 관광객과 함께!

Namu(南無) 2008. 12. 9. 23:08

어제 경복궁을 일본어 무료 해설과 함께 관람하고 너무 즐거워서 오늘은 창덕궁을 가보려고 집을 출발했습니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것은 월요일은 창덕궁이 휴궁일이고 화요일은 다른 궁궐이 휴궁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오늘도 일본어로 가이드를 들으려고 시간에 맞추어 나갔습니다.

그런데 출발 전에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자료를 보려고 갔더니 이런 마음에 아주 들지 않는 배너가 보이더군요. 이게 무슨 소리인지 거참. 오늘 여기서 그런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서 넘어갑니다만, 언제 대놓고 비판하도록 해야겠습니다.

버스를 타고 유유자적 도착한 창덕궁. 그렇습니다. 딱 12시 30분 직전에 도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인 관광객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창덕궁 정문 앞을 꽉 메우고 있더군요. 나중에 해설 해주셨던 분께 들은 이야기인데, 창덕궁에 원래 일본인 관광객이 많이 오고, 더불어 다른 궁궐이 휴궁일이라 더 많은 거 라더군요. 그나마 12시 30분은 점심 시간과 겹쳐 적었던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까운 다음 한국어 시간. 한국어로는 매시 15분, 45분에 2번 출발하기 때문에 여유 있게 가도 괜찮습니다. 아, 그런데 굳이 이런 해설이 필요 없다고요? 안됩니다. 창덕궁은 1976년도에 문화재 훼손으로 폐관한 다음 3년 동안 보수 공사를 거쳐 79년에 재개장 한 후부터는 이렇게 제한되게 코스에 따라 해설과 함께만 보실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 비해 창덕궁이 더 제한을 두는 것은 다른 궁전에 비해 훼손된 정도가 적고 오래된 건물이 잘 보전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997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고 합니다. 서울에 있는 세계문화유산은 창덕궁과 종묘라고 하는데, 해설해 주신 분의 말로는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합니다. 왜 경복궁은 신청하지 않았냐고요. 그 이유는 경복궁은 전쟁과 화재로 많은 손실이 있었고, 이전 남아있는 건물이 거의 없이 복원된 건물인지라 가치가 떨어지는 면이 있어 신청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한국어로 설명해 주시는 가이드 분과 출발하려 보니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한국인은 저를 포함해서 7명. 그리고 일본인 2명, 중국인 2명. 그렇습니다. 한국어 가이드를 따랐지만 이번에도 일본인 관광객과 함께 창덕궁을 본 것이었습니다.

2008/12/09 - 일본인 관광객과 함께 경복궁 둘러보기

자, 이번에도 출발하여 처음 도착한 곳은 인정전. 인정전은 처음 1405년에 건설되지만, 임진왜란 때 유실, 다시 광해군 1년인 1609년에 복원되지만, 순조 3년인 1803년에 유실된 것을 다시 다음 해 재건축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순종 1년인 1908년에 일부 양식으로 개조해서 내부에는 돌이 아닌 마루가 깔려있고 전등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복궁의 근정전 역시 개조되었지만 유실되어 그 흔적이 남아있지 않고 현재 복원된 것은 그 이전 모습으로 복원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창덕궁은 마지막 임금인 순종이 쓰던 형태로 가장 잘 남아있는지라 내부가 이런 양식의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원래 이전 형태로 복원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반대입니다. 그것이 역사이고 그 모습 그대로 놔두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이 점에 대해서는 해설자 분도 같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훼손된 것이 아니라면 있는 그대로 놔두는 게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경복궁이 좀 더 이전 시대 모습으로 복원된 것이라면, 반대로 창덕궁은 가장 마지막 임금의 모습을 나타낼테니 일석이조 아니겠습니까?

이것은 인정전의 내부 사진은 아니고, 1910년부터 1917년 사이에 일본 궁내청이 소장하고 있는 창덕궁 사진첩 중 하나인데, 보다시피 서양식으로 내부가 개수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외부에도 전등이 곳곳에 설치되어 있는 것이 참 묘한 느낌이 듭니다.

인정전을 떠나 현재 남아있는 궁궐내의 유일한 청기와 건물인 선정전을 지나 희정당으로 향했습니다. 희정당은 역시 1917년에 화재로 소실되어 현재 남아있는 것은 경복궁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건물 좌우측의 환풍구에 강(), 녕()이라는 글자가 그대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이 건물 역시 내부는 서양식으로 개조되고 궁전의 침실에는 침대도 볼 수 있습니다. 가려져 있어 볼 수 없지만 내부에는 양식 화장실과 임금님 전용 이발소까지 있다더군요.

그런데, 이때 창덕궁으로 경복궁의 건물을 옮긴 것은, 1917년 창덕궁이 화재로 소실되면서 순조가 거처를 옮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나, 조선총독부 건물을 경복궁 터에 짓기 위해 일부러 창덕궁을 불태웠다는 설이 있습니다.

이렇게 직접 양식으로 꾸며진 창덕궁 내부를 보니,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 이유가 짐작이 갔습니다. 이것은 양식이라고 하지만, 전형적인 일본화된 양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을 보니 마지막 황제에서 본 푸이의 모습이 생각 났습니다. 영화 내내 서양화된 자금성의 내부. 그 모습과 겹쳐 보여서 느낌이 묘했습니다.

사람 수가 적고 그 중 4명은 외국인이다 보니, 이번에는 가이드 옆에 붙어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었습니다. 어제 갔던 경복궁의 일본인들은 질문 한마디도 안 하는 분위기라 갑갑했거든요. 해설자 분도 주말에는 한국인이 많지만 일본인은 내내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본인 안내가 힘들지 않냐 했더니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질문 한마디(!)도 안하고 통솔에는 잘 따라주기 덕이라 더군요. 하하하.

쭉 건물을 돌아보고 해설을 듣고 나니 창경궁으로 향하는 문과 창경원의 유일한 흔적인 식물원이 보였습니다. 원래 창덕궁과 창경궁은 하나로 이어져 창덕궁에는 왕과 왕비가, 창경궁에는 후궁과 왕족들이 살았다고 하는데, 복원 공사를 하며 보호하기 위해 벽을 설치한 것이라고 합니다.

쭉 돌아보고 나오는데 몇 군데 안 간 거 같아서 물어보니, 그곳은 특별 코스로 하루에 50명 인터넷으로 예약 받아서 관람 가능한 코스라더군요. 그곳은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살았던 낙선재와 창덕궁 뒷산에 흐르는 옥류천이라고 합니다. 단, 옥류천은 동절기인 11~3월까지는 개방하지 않는다더군요. 게다가, 화수목과 금토일의 코스가 좀 달라서 화수목에는 연경당을 들리고 금토일에는 낙선재를 들린다고 합니다. 아, 물론 낙선재 특별 코스와는 달라서 낙선재 특별 코스는 그 내부만 둘러보는 것. 즉, 화수목에 하루, 금토일에 하루, 그리고 낙선재, 옥류천 특별 코스를 신청해서 봐야만 모든 곳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따지면 일반 관람 3,000원 x2, 특별 관람 5,000원 x2. 무려 16,000원! 그러나 비싸지 않습니다. 코스 내내 해설 잘 해주시고 물어보면 잘 대답해 주시고. 게다가 중요한 것은……

해설자 분이 예쁩니다.

해설해 주시는 분이 큰 렌즈의 안경을 쓴, 소위 말하는 우등생 스타일에 목소리도 예쁘고, 한복을 입은 자태가 너무 아름다우셔서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았답니다. 가이드 내내 옆에 붙어서 따라다녔는데 괜히 기분이 좋더군요.

주말에는 한국인 관광객이 많고, 외국어 안내 시간에는 원칙적으로 한국인 입장이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원칙이야 원칙이고 하니 다른 언어에 자신 있으신 분은 따라가도 좋을 거 같은데, 일본어 안내를 따라가는 건 비추입니다. 사람도 많고, 그 사이에 껴서 물어보면 눈치도 보일 테니까요.

이로써 서울에 있는 경복궁, 창덕궁을 정복(?)하였습니다. 창덕궁은 몇 번 더 가보겠지만, 우선 창경궁과 덕수궁을 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다른 궁궐이 휴궁일이라 못 봤지만, 다음 도전 목표는 창경궁과 덕수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