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야기/식당 방문

오키친 2 - 2007년 11월 13일 방문

Namu(南無) 2007. 12. 6. 21:40
11월 맛집 모임, 오키친(이태원) 특별 디너.shadow-dancer님이 주최하셔서 harunokotori와 함께 다녀왔습니다. 오키친은 이야기만 들어보다가 가봐야지 가봐야지 마음만 먹다가 2호점을 가보게 되네요. 벌써 4주 전의 일입니다만, 더 이상 지나다간 그때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거 같아서 이렇게 샥샥 올립니다.

오키친은 오정미 푸드아트 인스티튜트의 부설 기관으로 메인 쉐프는 오정미 선생님의 남편 분인 스스무 요나구니이 하고 계시죠. 오키친이란 가게 자체가 저 푸드아트의 학생들이 실습할 수 있는 그런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는 상대적인 가격을 보여줄 수 있다고 하네요.

어쨌든 반쯤은 타의(?)에 의해서 찾게 된 가게고 뭐, 별로 준비할 거 없이 몸만 달랑 가서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 편하게 여자친구를 만나서 찾아갔습니다. 하도 찾기 어려울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가서인지 몰라도 금새 찾을 수 있었어요.
준비된 메뉴는 이렇게 해서 11가지였습니다. 잘 안보이죠? 게다가 영어이고 하니 우리 쉽게 볼 수 있는 한국어로 가보죠.

1. 두 가지 소스의 굴과 양념된 굴
2. 고르곤졸라를 채운 무화과
3. 아나고와 직접 재배한 오르기에떼 샐러드
4. 버섯과 크림 파스타
5. 볼로네즈 스파게티
6. 소금껍질로 구운 연어
7. 졸인 감귤 소스의 오븐에 구운 돼지고기
8. 감과 자몽 셔빗
9. 파나코타
10.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과 쵸콜렛 케이크
11. 커피 또는 차

넵! 이렇게 해서 11가지이고, 전체 3종 파스타 2종 메인 2종, 디저트 3종, 그리고 커피 또는 차 1종입니다.

저는 간다고만 하고 별로 신경을 안쓰고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얼마나 많은 분들이 모이시는지, 메뉴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사전 지식 없이 갔습니다. 반대로 놓고 보면 그리 기대하지도 않은. 테이블 위치도 확인 안했으니까요. 그런데 나중에 shadow-dancer님의 블로그를 보니 몇명 참가하고 테이블 위치에 메뉴까지 모두 있더군요. 참고하고 가면 좋았을텐데요. 특히 메뉴 구성은요.

잘 모르고 도착했기 때문에 놀랐습니다. 그리 크지 않은 오키친 2였습니다만, 모두 모임 분들로 꽉 차있었으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50분이 가게 전체를 메웠으니까요. 한 서너 테이블 해서 20명 내외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그 두 배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처음 스스무 선생님이 인사와 함께 메뉴를 간단히 소개해 주셨지만 제가 앉은 자리에서는 못 들었습니다. 자리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이 모임에 대해 정리하면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짠~ 언제나 빵은 중요하죠. 빵을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남는 소스를 훑어 먹기 위한 게 빵입니다. 빵은 너무 많이 먹지 않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빵은 기본적이고 적당히 기름기도 있어서 그냥 먹기에도 심심하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올리브 기름은 기본으로 당연히 나왔습니다만, 발사믹은 뿌려있지 않았어요. 서버들에게 부탁할까 했지만 정신 없는 상태라 그러진 못 했네요. 발사믹은 주었으면 했어요.

1. 두 가지 소스의 굴과 양념된 굴
첫 메뉴는 굴입니다. 두 가지 소스는 왼쪽부터 살사 소스, 핫 소스, 그리고 마지막은 허브에 양념된 것이죠. 이 중 살사가 가장 상큼하니 좋았습니다. 반대로 핫 소스는 굴의 향이 죽어서 별로였고요. 허브에 양념된 건 무난했습니다. 굳이 이렇게 세가지인 것보다는 두 가지가 더 나았을 거 같아요. 굴은 맛있긴 하지만 향이 강해서 3개나 먹기에는 좀 질리는 감이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세 가지로 나누어 맛을 다채롭게 한 거 같습니다만.
우효~ 오늘 식사와 함께 할 몬테스 알파입니다. 무난하게 밥 먹을 때 개념없이 고르기 좋죠. 이 테이블에는 harunokotori 말고도 한 커플이 더 있어서 넷이 함께 했는데, 다른 두 분 특히 여자 분이 술을 거의 안드셔서 저와 제 여자친구가 거의 다 마신 거 같아서 죄송스럽습니다^^ 사진 속의 두 분은 창가에 앉은 두 분의 여성. 어느 쪽이 harunokotori였을지는 비밀이죠. 아! 사진 각도에서 다 드러나는군요!! ;

2. 고르곤졸라를 채운 무화과
무화과만 구웠다고 생각했는데 고르곤졸라가 안에 채워져있더군요. 그리고 딱딱하게 구워진 프로슈트가 짭짜름한 것이 좋았습니다. 무화과도 아주 달달하게 절여져 있어서 졸았고요. 짠맛 단맛 치즈맛이 강렬하게 섞여서 입에서 확 올라오는 게 마음에 들었습니다. 와인에도 아주 좋더군요. 절대 많이 못 먹을 에피타이저에 적격이었습니다.

3. 아나고와 직접 재배한 오르기에떼 샐러드
아나고! 저는 붕장어 아주 좋아합니다. 구워도 좋고 회로도 좋고 초밥으로도 좋고요. 스스무 선생님이 이걸 먹을 때 오르기에떼는 직접 재배한 것은 이게 마지막이라고 맛있으니까 꼭 먹으라고 하더군요.

4. 버섯과 크림 파스타
파스타는 거의 동시에 나왔습니다만, 저는 버섯을 워낙 사랑해서 ...
이렇게 싹싹 핥아먹었습니다. 혀가 아니라 빵으로지만. 주변에 사람들 없었으면 혀까지 동원했을 거에요.

5. 볼로네즈 스파게티
그에 비해서 색깔은 더 예쁘지만 그리 사랑 받지 못 했죠.

6. 소금껍질로 구운 연어
이게 오야코동하고 비슷한 거겠죠? 꿩 먹고 알 먹고 연어 먹고 연어알 먹고. 껍질 부분이 없었던 건 아주 큰 연어를 조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이런 경우 껍질의 바삭함은 못 느끼지만 육즙은 알맹이가 더 나았던 거 같습니다. 우적 우적 잘 먹었어요. 와인이 절 부르게 하는 음식이더군요.

7. 졸인 감귤 소스의 오븐에 구운 돼지고기
반대로 이 쪽은 약간 식은 거 같아요. 좀 더 뜨거웠으면 소스의 향이 확 올라오면서 맛있었을 거 같은데. 메인 요리의 서빙 속도가 늦어지면서 식은 거 같습니다. 이 부분은 아주 마이너스였어요. 맛은 돼지고기가 살리고 향은 소스가 살리는 걸 목표로 한 거 같은데 그게 잘 안맞았습니다. 그래도 이 쯤 오니까 와인 1병이 끝난 상태였습니다. 흠, 그렇죠 와인 한 병과 4명 식사가 딱 맞는 거 같습니다.

8. 감과 자몽 셔빗
흑흑. 벌써 디저트 타임입니다. 그렇지만 종류가 많았고 계속 빵도 먹어줬기 때문에 배가 고프진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부를 정도였죠. 여자친구는 배부르다고 난리더라고요. 제가 그래서 빵 많이 먹지 말고 소스를 처리할 때 쓰라고 말했건만.

자몽은 약간 상상한 그대로의 맛이었지만 감이 좋았습니다. 살짝 떱떠름한 게 입을 상큼하게 하는 게 좋았죠. 반대로 감 셔빗을 먹고 자몽 셔빗을 먹으니 이게 무슨 맛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한참 고민하고야 자몽인 걸 알았습니다.

9. 파나코타
달지 않아서 굳!

10. 직접 만든 아이스크림과 쵸콜렛 케이크
전 쵸콜릿을 좋아하나 쵸콜릿을 쓴 다른 건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그저 그랬습니다. 여자친구는 맛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녹아가는 아이스크림과 함께 먹을 땐 딱 적당히 달고 적당히 차갑고 적당히 부드러워서 좋았습니다. 아이스크림 양이 살짝 부족한 느낌이 들었어요. 딱 1:1이면 좋을 거 같은데요. 한 스쿱 위에 올리고 한 스쿱은 옆에 함께 놓아서 얹어놓고 먹고 녹아내린 케이크를 섞어 먹고 하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11. 커피 또는 차
크레마 좋네요. 맛있게 먹었습니다. 역시 식후에는 커피 한잔 해줘야 해요.

자, 각기 요리에 대해 평가를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보면 장점은 신선한 재료를 간단하게 조리해서 향을 잘 살리는 요리가 많았다는 겁니다. 기본에 충실하다면 충실한 것이죠. 이 정도면 천천히 여유롭게 아주 잘 먹은 것이기도 하고요. 잘 먹고 잘 마시고 즐겁게 이야기하면서 시간을 보냈으니 좋지 않을 수 없죠^^. 끝나고 맥주라도 한잔 하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배가 터질 거 같아서 사양했습니다.

그렇다면 나빴던 점도 이야기해볼까요? 음식을 놓고 보면 살짝 식은 감이 있었던 고기 요리와 가끔 간이 살짝 왔다 갔다 하는 듯한 메뉴가 있었다는 거죠. 살짝 짜게 느껴진다던가 살짝 싱겁게 느껴진다던가. 괜찮은 건 괜찮은 데 제 기억으로는 아나고가 살짝 강했고 반대로 볼로네즈가 살짝 약했습니다. 이건 개별개별이 문제보다는 순서에 따라서 더 강하게 느껴진다던가 반대이던가 했던 거 같습니다. 아나고는 야채도 많은 편인데 소스가 좀 많이 들어간 것 같았고, 볼로네즈는 간 자체가 덜 된 거 같았고요. 이건 대량을 서빙하면서 생길 수 있는 흔한 실수입니다만, 아쉽죠.

그리고 모임 전체를 놓고 보자면 너무 많은 인원이 모인게 아닐런지. 가운데 긴 테이블 하나만 채울 정도 인원이었으면 위 문제도 없고, 처음 스스무 선생님의 인사라던가 shadow-dancer님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더불어서 제가 앉았던 자리는 창가의 바람이 좀 쌀쌀하게 느껴졌고, 게다가 벽이 가려서 이야기를 하나도 못 들었답니다. 안타까웠어요.

다음에도 이런 모임이 계속될지 또는 제가 갈 수 있을지 (또는 초대하실지) 모르곘지만, 사람 수는 적정하게 맞추는 게 좋을 거 같아요. 그래야 요리도 더 잘 정리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래도 얼굴 모두 마주할 수 있는 정도 인원. 하나의 긴 테이블에 앉을 수 있는 20명 정도 인원으로만 했어도 저런 문제 없이 더 즐겁게 맛있게 먹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많은 이들을 초빙하고 또 장소 섭외하고 메뉴 정하느랴 수고하신 shadow-dancer님! 제가 좀 까칠하게 뭐라 했다고 마음 상해하지 마시고 다음에도 좋은 모임 열어서 저도 꼭 초대해 주세요^^

앞서 사진은 너무 작죠? 원본 사진입니다. 혹시나 크게 보실 분들을 위해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