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이야기/커피

커피와 브라운 커피메이커, 에스프레소와 에스프레소 머신

Namu(南無) 2005. 6. 14. 08:56
사무실의 제 자리에는 브라운의 커피 메이커가 있습니다.
좀 오래되고 낡기도 했고, 물통의 플라스틱 부분이 "삭아서" 떨어질 정도로 오래되었긴 했습니다만, 마음 편하게 쓰고 있습니다. 이 메이커는 회사에 있는 다른 분이 제공한 물건이고, 콩과 필터는 적당히 저랑 그 분이랑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제 옆자리는 비어있는 자리라, 각종 서버가 책상 밑에 쌓여있습니다. 이것이 여름에 제 자리를 덥게 해주는 물건입니다. 물론, 진짜 문제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20", 19" CRT입니다만. 선풍기로 견딜 뿐이죠.

어쨌든 제 자리는 덥습니다.

그런데 저는 제 자리를 언제나 더 덥게 만드는 물건을 제 자리 옆에서 돌리고 있습니다. 비어있는 옆자리의 책상은 커피 메이커, 각종 콩이 담긴 봉지. 필터, 차, 알로에 화분, 가습기. 그렇습니다. 바로 저 커피 메이커가 제 자리 주변을 더 덥게 만드는 원흉입니다.

매일 아침 회사에 출근하면 콩을 갈고, 커피 메이커에 투입하고 하루 종일 커피 향이 물씬 풍기고 물 대신 커피를 마시고. 누군가 말하는대로 제 몸을 응축하면 남는 건 카페인일 듯 싶습니다. 콩을 갈기 위해 적당량을 믹서에 넣고 "드르르륵" 갈기 시작하면 소리가 생각보다 큽니다. 시끄럽죠. 단, 10~20초 정도면 모두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럭저럭 다들 이해해 주는 편입니다. 만약, 이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싫었던 분이 계셨다면 죄송합니다.

이러다보니 욕심이 생겼습니다. 커피 메이커로 나오는 커피는 묽고 아무리 진하게 해도 딱 한잔에서 확 쏘는 느낌이 약합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죠. 에스프레소입니다. 찐득하고 새까만, 독약 같은 모양새의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저랑 같이 커피를 마시는 그 분과 함께 회사의 실권자 (하하;) 인 한 분을 닥달하야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했습니다. 그것이 어언 한달 가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동은 일요일 밤에 처음 해봤습니다. 처음 택배 배달이 온 날, 청소를 위해 깨끗한 물을 넣고 돌려보는데, 엄청나게 시끄럽습니다. 그렇죠, 에스프레소 머신은 기계 압력으로 응축된 뜨거운 물을 압력으로 밀어내서 고밀도의 커피를 얻는 기계였습니다. 즉, 사무실의 책상 위에서 쓸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놓기 전에 알고 있었어야 하는 거 아니냐, 라고 토를 다실 분도 있겠지만, 저는 몰랐기 때문에... 더 진한 커피를 위해 우선은 빨리 독촉해서 기계를 얻어내자, 이 생각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기계를 설치할 곳을 물색해보았습니다. 탕비실 같은 곳이 있다면 그곳이 제격입니다만, 없으므로 무효. 그러다보니 옆 동네와 이 동네의 사이 공간에 있는 휴게실. 정확하게는 저 동네입니다만, 이 동네와 같이 쓰는 공간이므로 -누구 마음대로인진 모르겠습니다만, 우선 그건 나중 문제- 그곳에 위치한 전자렌지 옆에 설치. 화장실과도 가까워 세척도 쉽고 정수기도 옆에 있으므로 조건은 좋습니다. 냉장고도 옆에 있습니다만, 그것은 옆동네 물건.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고 설치된 에스프레소 머신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염가형의 저렴한 물건이죠. 그래도 동시에 2잔을 뽑을 수 있고, 스팀 거품기도 있고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다만, 스팀 거품기는 쓸 일이 없습니다. 우유 거품내서 에스프레소에 넣어먹진 않으니까요.

그래서 대망의 가동. 생각했던 것보다 옅게 나와서, 다시 콩을 곱게 갈아서 꾹꾹 눌러서 뽑았습니다. 녜, 그렇게 맛있다고 할 정돈 아니었지만 콩을 사와서 콩을 갈아서 콩을 다져서 시끄러운 소리 속에서 뽑아마시니 행복합니다.

이로써 제 몸은 더욱 커피물이 들겠군요. 대신 제 자리 주변을 메우던 커피 향도 사라질 것 같습니다. 저 친구 때문에 커피 메이커는 별로 안돌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