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겹쳐 일본인에게 베푼 친절
오늘도 늦은 시간까지 직장에서 일했습니다. 요즘 정리할 내용이 많아 늦은 시간까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오늘도 그러했습니다. 직장인 삼성동을 출발할 때는 이미 11시를 넘은 시간.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없기 때문에 버스를 갈아타기 위해 압구정동으로 향했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은 압구정동으로 가는 길 말고 영동대교를 건너 건대 앞을 지나서 가는 길도 있습니다만, 그날따라 압구정으로 발길이 향하게 되더군요. 그것이 하나의 전조였습니다.
압구정으로 향하다
참 우연이 겹치면 그것도 필연이라고 하죠? 바로 오는 버스를 탈까 하다가 어째 담배를 한 모금 피우고 싶어 버스 정류장을 벗어나 한대 태우고 그러고 바로 도착하는 3217번 버스를 무시하고, 143번 버스를 탔습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앞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길을 건넜죠.
길을 건너 버스를 타려는데, 버스에 자리가 없더군요. 집까지 1시간가까이 더 가야 하는데 서서 가는 건 힘듭니다. 그래서 버스를 그냥 지나쳤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고 있던 제게 누군가가 말을 걸었습니다.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 그의 말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귀에서 이어폰을 뺐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들려오는 한국어는 참 알아듣기 어려웠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들어도 외국인이 말하는 한국어였습니다. 대충 듣기에 어딘가 전화를 해야 하는데 전화가 안 된다는 듯 했지만 정확히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허, 이거 어떡하나 하고 난감해 하고 있는데 그가 들고 있는 핸드폰에 써있는 au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au는 바로 일본의 휴대폰 통신사입니다. 그걸 보고 그가 일본인이라는 것을 짐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제 어눌한 영어 실력을 살려 그에게 물었습니다.
Are you a japanses?
바로 그렇다고 답이 돌아오더군요. 저는 일본어로 말하겠다고 양해(?)를 구하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죠. 제가 그를 만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우연이 겹쳤습니다. 왠지 모르게 버스 정류장 앞에서 시간을 보냈고, 자리가 없어 버스 한 대를 보내는 그 순간 제게 말을 걸었으니까요.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고 하죠? 그때는 그것을 깨닫지 못 했지만 그래도 늦은 시간에 외국인이 곤란한 모습을 보고 지나칠 순 없었던 것입니다.
고장 난 공중전화, 내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다
공중 전화로 한국인 친구에게 전화를 걸려고 하는데 전화가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전화를 거니 정말 안되더군요. 동전을 투입했지만, 신호음이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친구의 전화번호를 물어 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국인 친구는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 있더군요. 그때 저는 깨닫지 못 했지만 일본인 친구에게 제 핸드폰을 넘기고 통화하게 할까 하다가 이 친구가 이 근처를 잘 모르는 듯 하여 제가 직접 여기가 어딘지 설명하고 찾아오라고 전하였습니다. 그러자, 그는 곧 오겠다고 하더군요. 안심하고 버스를 기다리려고 하니 또 안 오는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전화를 하던 도중 기다리던 버스가 이미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별 수 없이잠시 쉬어있을까 하는데 그 일본인이 구석에 앉아 한국인 친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더군요. 저도 시간이나 보낼 겸 그의 곁에 앉아 말을 걸었습니다.
그는 어려 보였지만 학교를 졸업하였고, 한국인 친구가 있어 가끔 한국에 온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30대 중반 아저씨의 오지랖으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물었습니다. 이어폰을 꼽고 있는데 왜 제게 말을 걸었냐고 물었더니 “인상이 좋아 보여서”였습니다. “잘못 보셨군요”하고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전화를 걸게 된 이유는 버스 정류장을 한 정거장 먼저 내렸기 때문이 라더군요. 원래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내렸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의 한국인 친구가 오더군요. 그는 긴 머리를 틀어서 묶어 올린 호청년이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인 친구에게 인도(?)하고 저는 바로 도착한 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우연이 겹쳐 일본인에게 베푼 친절
결국 우연이 겹쳐 일본인에게 친절을 베풀 게 된 것인데, 나름 기분이 좋았습니다. 반대로 생각해 보세요. 외국에서 공중전화는 안되고, 11시를 늦은 밤. 주변 사람들은 무서워 보이고. 그럴 때 친절함이란 별 것이 아니겠지만, 받아들이는 이에겐 편안함으로 다가갈 것입니다.
저는 겨우겨우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왔습니다만, 그 둘은 무얼 하고 있을까요? 궁금하네요. 아키라씨, 한국에서 즐겁고 편하게 놀다 돌아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