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이야기/원자력과 핵

2009년 히로시마 종이학 평화행진

Namu(南無) 2009. 8. 15. 00:45

지난 주 회사에 덩그러니 휴가를 냈습니다. 회사 사람들은 다들 여름 휴가를 가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휴가는 휴가이나, 휴식은 아니었습니다. 왜냐면 놀러 간 것이 아니라 어떤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기 때문입니다.

8월 6일 오전 8시 15분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5분. 히로시마는 무척 더웠습니다. 그리고 맑았습니다. 그리고 “리틀 보이”가 떨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64년 전 8월 6일. 세계 최초로 원자 폭탄이 투하된 것입니다. 그리고 5일 뒤, 8월 11일 나가사키에 또 다른 원자폭탄 “팻 맨”이 투하되었습니다.

그 참상은 무척 심각했습니다. 1945년 8월부터 12월 동안 약 9~12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원폭에 의한 육체적, 그리고 정신적 피해를 안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이후 그러한 원자폭탄, 수소폭탄. 아니 핵 사용을 반대하는 행사가 히로시마, 그리고 나가사키에서 1주일간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올해가 바로 제64회 원수폭금지세계대회가 지난 8월 4일부터 히로시마를 출발하여 나가사키에서 11일에 폐회하였습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저는 이 행사에 공식 초대된 멤버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어를 조금 할 줄 안다는 이유로 통역을 이유로 함께 하였습니다. 5일의 일정 동안 한국어-일본어 통역을 하면서 일본 정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 이야기는 또 다음에 하도록 하도록 하겠습니다.

원자폭탄이 떨어진 폭심지. 그곳은 바로 사진 너머에 보이는 원폭돔입니다. 그리고 원폭돔 앞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일행과 함께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과 평화기념관을 둘러보고 기념관을 나서자 이미 많은 이들이 행진을 위해 모여있었습니다. 일본 전국 각지에서 북쪽으로는 홋카이도, 남쪽으로는 오키나와에서.

종이학 평화행진

그리고 그들은 ‘종이학 평화행진’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왜 “종이학” 평화행진인지 아십니까? 그것에는 무척 슬픈 이유가 있습니다. 히로시마에서 2살 때 피폭한 사사키 사다코라는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폭심지에서 1.7km 떨어진 곳에서 피폭했지만 별 문제 없이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1955년 2월, 갑자기 증세가 나타나 검사해보니 백혈병이라는 것이 판명, 수명 1년이라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천 마리의 종이학을 접으면 건강해 질 수 있다고 믿고 학을 접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녀는 1955년 10월 25일. 13살(일본 나이 12살)의 나이로 생을 마칩니다. 그 뒤로 피폭자를 기리기 위해 종이학을 접습니다.

평화행진은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앞을 출발하여 히로시마 현립체육관을 향했습니다(사진은 왼쪽으로부터 사회당 최광은 대표, 이 대회를 개최한 원수폭금지일본국민회의 겐스이킨 스태프,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지은 간사, 그리고 그녀의 12살 연상인 곧 남편이 될 남자친구!).

이번 행사에는 사회당과 참여연대 뿐 아니라, 5.18 구속부상자회 분들도 참가하였습니다. 프랭카드를 들고 행진하는 네 분 중 왼쪽에서 두 번째 분입니다. 그 뒤로 부상자회 깃발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5.18 구속부상자회는 몇 년 전부터 겐스이킨과 교류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른쪽에서 팔을 힘차게 들고 있는 분은 야기 류지씨. 한국 정치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갖고 제게 많은 질문을 주셨습니다. 체류 도중 함께 하였던 분 스태프 중의 한분입니다. 올해 9월에 한국에 올 예정이라 하시더군요.

행진은 경찰의 교통통제와 안내를 받으며 히로시마 시내를 평화롭게 행진했습니다. 집회란 것은 이렇게 경찰의 보호와 안내를 받으며 하는 것이지요. 이날 행진은 이렇게 40분 동안 평화롭게 진행되었습니다.

물, 그들은 물을 원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는 한국인 피폭 피해자를 위한 위령비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위령비 앞을 가도 물이 놓여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이유를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원자폭탄이 떨어진 후 히로시마 전역의 물은 오염되었습니다. 마시기는커녕 몸에 닿아서도 안 되는 방사능에 오염된 ‘검은 물’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원폭의 피해로 “물… 물!”을 외치는 이들에게 한 모금의 물을 줄 수도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위령비에는 모두가 물을 놓아 그들의 넋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그리고 원자폭탄

그리고 그 이후로 원자폭탄은 실제 전쟁에 쓰이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전세계에는 몇 만 발의 원자폭탄, 수소폭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 평화 그리고 동북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를 통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하는가. 그 이야기는 다른 글을 통해 계속하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