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만 해도 많은 유적이 있는 거 아시죠? 서울은 조선시대 500년 역사가 숨쉬는 오래된 수도이고, 그에 걸맞게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여러 궁궐과 박물관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조선시대 유적지를 가보면 덩그러니 놓여있는 건물과 그 속에서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하고 방황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럴 때 가이드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군가 잘 설명해 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 마련이죠. 하지만 그런 가이드를 어디서 구하는지도 모르겠고, 구한다 쳐도 비쌀 거 같은 생각에 아마 생각도 못 해보셨을 겁니다. 그러나 있습니다.
그것도 무료로.
제가 고궁 무료 가이드라고 말씀 드렸지만, 정확한 명칭은 "무료 해설"입니다. 각 유적지 별로 문화재청에서 운영하는 무료 해설사가 있으며, 주말에는 자원봉사 단체에서도 함께 해주고 있습니다. 우리궁궐지킴이 ( http://www.rekor.or.kr ) 와 우리궁궐길라잡이 ( http://www.placeguide.or.kr ) 에서 함께 하고 있습니다. 저도 이런 무료 해설이 있다는 것은 몰랐는데, 알게 된 계기가 참 우연찬습니다.
2008/12/09 - 일본인 관광객과 함께 경복궁 둘러보기
때는 촛불항쟁 시절. 6월 6일. 차벽으로 둘러싸인 세종로 사거리를 넘어 무작정 혼자서 걸었습니다. 그저 청와대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청운동 별관 앞에서 저지 당했습니다. 청와대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이 근처 거주자가 아니라면 갈 수 없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괜히 따져봤자 어찌 될 것도 아니고 해서 저는 순순히(?) 물러나야만 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청와대를 보러 가자고. 그리고 며칠 전, 아무 생각 없이 아침에 일어나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그러나, 분수대 앞에서 보이는 청와대는 영빈관이 보일 뿐, 청와대 건물조차 지붕이 겨우 보일 정도였습니다. 저는 실망하고 경복궁 북쪽 길을 쭉 따라 삼청동 카페라도 가볼 심정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경복궁을 쭉 따라가는데, 민속박물관이 무료라는 이야기가 있더군요. 공짜라면 사람 마음이 혹하는 법! 어절씨구~ 외치며 구경을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외국인 관람객이 가득 있어 구경할 마음이 나지 않아 1층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들고 경복궁 궁내로 향했습니다. 여기저기 정처 없이 떠돌았죠.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건물이 있군. 나는 여기 있군. 근데???" 정말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몇몇 건물 앞에 안내판이 있을 뿐이고,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없고. 글자는 하얀 것이고 배경은 갈색이로다. 표지판이 갈색에 흰색 글씨였으니까요. 몇 군데 들러보다 흥미를 잃고 나가야겠다 싶어 광화문 방향으로 향하던 도중 저는 이런 안내를 듣게 됩니다.
“日本語の案内が5分後、始まります。”
(일본어 안내가 5분 뒤 시작합니다)
그렇습니다. 일본어로 방송이 나왔습니다. 흥미 본위로, 일본어로 듣는 고궁 해설은 어떨까, 그런 마음에 안내를 시작한다는 표지판 앞으로 향했습니다. 일본인 관광객이 십 여명 모여있었고 그 앞에 해설을 담당하시는 분이 독특한 스피커를 목에 걸고 일본어로 해설하고 있었습니다. 시간도 남겠다 한번 들어볼까 하고 천천히 따라가던 저는 친절한 해설과 내용에 흥미진진하게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일본인 관광객은 지쳐서 몇몇 다른 길로 향하셨는데, 정작 저는 끝까지 경복궁의 관람을 무료 해설과 함께 1시간 20분 동안 함께 했습니다.
"오, 이렇게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무료 해설을 하는구나!"
그렇게 감탄하고 집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켜서 궁궐의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외국인을 위한 무료 해설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한국인을 위한 무료 해설이 훨씬 많았고, 모든 궁궐에서 무료 해설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로부터 고궁 순례가 시작한 것입니다.
바로 다음날은 창덕궁으로 향했습니다. 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창덕궁을 제외한 모든 궁궐은 화요일에 휴궁하고, 창덕궁만 월요일에 휴궁하는데, 그날이 화요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창덕궁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문화재 보호를 위해 다른 궁궐처럼 자유관람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해설사와 함께 궁궐을 돌아보는 것만 가능한 곳이더군요. 그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현재 서울에 있는 조선시대 궁궐 중 보존 상태가 가장 좋고, 한 때 창덕궁이 관람객에 의해 훼손되어 1976년에 폐쇄, 3년 동안 보수 공사를 거치고 1979년에 재개장하면서 지금처럼 제한 입장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2008/12/09 - 창덕궁을 일본인 관광객과 함께!
그리고 종묘, 창경궁을 돌아보고 마지막으로 고궁 박물관까지 모두 돌아본 느낌은 입장료가 싸다! 평일에 돌아보니 1 대 1 해설이다! 저도 부담스럽고 해설사 분도 부담스러웠지만, 오붓(?)하게 돌아보며 즐겁게 고궁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여러 고궁을 둘러봤는데, 저는 그 중 창덕궁이 가장 마음에 들었습니다. 순종이 가장 마지막까지 쓰던 곳이며,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거처하던 낙선재 등 조선왕조의 가장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외부는 19세기의 모습이지만, 내부는 양식으로 개조된 모습이 참 독특했습니다. 그리고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각 궁궐에 흩어져 있던 유물이 한데 모여 있어 여러 양식을 보기 좋았습니다. 꼭 몇 군데만 보시겠다면, 경복궁, 창덕궁, 고궁박물관을 추천합니다. 모두 걸어서도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 하루 날 잡고 돌아보시면 아주 좋습니다. 특히 고궁박물관은 12월 31일까지 무료입니다.
자, 여러분도 고궁을 마음껏 만끽할 수 있도록 무료 해설과 안내 정보를 알려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복궁은 최초로 건설된 궁궐로써, 4대문과 건물의 배치, 동십자각과 서십자각 등 망루 배치 등으로 궁궐의 형태를 완벽하게 갖춘 법궁입니다만, 잦은 화재와 전란으로 오랜 시간 폐허로 남아있었고, 일제 강점기 시절에는 조선총독부가, 이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는 등의 수난을 겪었습니다.
가장 마지막까지 쓰인 궁궐이며, 고종 때 경복궁을 복원하기 전까지 조선시대에 중심 궁궐로 활약한 곳입니다. 조선의 제27대 왕이자 마지막 왕인 순종이 마지막으로 거처한 곳입니다.
창덕궁 후원에 자리 잡은 개울로 예쁜 정자가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후손인 영친왕과 이방자, 덕혜옹주가 마지막 생을 보낸 곳으로, 1989년까지 사용되던 곳입니다. 다른 곳은 둘러보지 않으며, 낙선재만 둘러봅니다. 단, 일반 코스와 겹치지 않으며 다소곳한 분위기가 좋습니다. (낙선재는 외국어 안내가 없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후궁과 왕실 가족이 주로 살던 곳으로, 1909년 이후 건물이 철거되고 동물원과 식물원이 설치되어 창경원으로 격하되었다가 1984년 이후 창경궁으로 복원되었습니다. 대부분 복제품입니다만, 광해군 때 새로 지어진 정문, 정전 등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 죽은 후 왕으로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시는 사당입니다. 건물은 몇 개 없지만, 다른 건물과 무척 느낌이 다릅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5월 첫째 주 일요일에 전통 방식에 따라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이 펼쳐집니다. 평소 가시는 것보다 이때 가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단, 사람이 무척 많다는 점 유념 하시기 바랍니다. (2008년에는 6만 명 가량 내방하였다 합니다)
상설전시 중인 조선왕조의 여러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여러 궁궐을 돌아본 후 꼭 들려서 해설과 함께 전시물을 보시면, 더욱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특히 2007년까지 창덕궁에 전시되어 있던 어차가 이제는 국립고궁박물관 1층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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