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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처음 뉴스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이 이야기는 한자로 한중일 3개국이 원활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데, 어째서 외래어를 현지 발음으로 표기하면서 한자를 익힐 수 있는 길을 막는가? 즉, 한자 교육 중심으로 풀어본 이야기입니다.
◆“의미전달 불가능한 발음기호일 뿐”
이 문제의 근원은 1986년 1월 문교부 ‘외래어표기법’ 제4장 제2절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에 있다고 참석자들은 지적했다. 발제를 맡은 이 연합회의 진태하(陳泰夏) 상임위원장은 “한자문화권에서 표음문자로 인명·지명을 표기하면 의미의 전달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문자로서의 구실을 못 한다”고 주장했다. 한자의 고유한 자형(글자의 모양)과 자의(글자의 뜻)는 한·중·일 3국 어디에서도 거의 다 통하지만, 자음(글자의 음)만은 각국마다 토착적인 발음으로 굳어져 사용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國’이란 한 글자를 ‘국(한국)·궈(중국)·고구(일본)’라고 써야 하겠는가? 그는 “한자를 제 나라의 발음대로 읽으면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건 한자 혼용 또는 전용 주의의 기본이죠. 한자를 음으로만 읽으면 그 뜻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한자어를 이해하고 말하고 듣고 하는 것일까요? 설마 그 한자 하나 하나를 익히고 있기 때문에요? 그건 아니죠. 우리는 그 단어를 음과 단어로써 익히고 있지 한자로 익히지 않았습니다. 600년 전엔 그랬을지 모르겠는데 전통을 위해서 돌아가야 하나 싶습니다. 우선 여기에서는 한자가 한국어에서 어떤 역할이고 그 교육이 필요한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므로 이 정도에서 이야기를 접도록 하죠.
◆중국인은 못 알아듣는 중국어 발음?
김창진(金昌辰) 초당대 교수는 “중국에선 ‘金大中(김대중)’을 ‘찐따종’으로, ‘三星(삼성)’은 ‘싼씽’, ‘安倍晋三(안배진삼)(아베 신조)’는 ‘안베이진싼’이라고 말한다. 한국·일본의 고유명사를 모두 중국어로 발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벨기에’라는 국명을 영어로는 ‘벨점’, 프랑스어는 ‘벨지끄’, 독일어는 ‘밸기언’이라고 읽는다. 국민이 모르는 주변국 고유명사의 ‘현지 원음’을 읽어주는 나라는 한국 말고 유례를 찾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이거 큰 착각인데요. 외래어 표기는 한국인을 위한 것이고 한국인끼리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것이지 다른 나라가 어쩌네 저쩌네는 무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한국 말고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하는데 미쿡도 그렇게 하고 일본도 그렇게 합니다. 고유 명사는 어느 나라던 현지 발음을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표기의 주체성은 어디에 있나?”
진태하 위원장은 원음주의 표기의 원인에 대해 “외래어 표기법이 누구를 위해야 하는지 주체성이 불확실한 데서 즉흥적으로 모색됐기 때문”이라며 “조선족자치주의 ‘龍井’ ‘圖們’ 같은 지명이라도 ‘용정’ ‘도문’으로 통일해 달라는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하며, 언론매체에서는 한자를 괄호 안에 쓰지 말고 밖으로 빼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론은 한자를 중시하자는 이야기인가요?
이 뉴스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접어두고 원론부터 이야기하도록 하죠.
왜 다른 국가에 비해 중국의 고유명사에 대해서 왜 이리 각별한 예외를 두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그 중심에 '한자'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중일 3개국은 모두 한자 문화권이고 어쩌구 저쩌구... 흔히 하는 이야기죠. 그런데 현재 3개국은 그럴까요? 과거 이야기 말고 현재 살고 있는 우리요.
저는 각 언어에서 이것을 나눠서 이야기해요. 한국어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한자라고 부르고, 일본어에 대해 이야기할 땐 칸지(かんじ)라고 이야기하고 중국어에 대해 이야기할 땐 한쯔(hànzì)라고요. 외국어 배운 거 티 내냐고요? 아니죠. 각기 각 언어권에서 다른 용도로 쓰이고 그 정도가 이미 많이 갈라졌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의 예를 들어보죠. 한국어에서 한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한자를 알아야 언어를 쓸 수 있나요? 아니죠 전혀. 3개국 언어에서 가장 한자에서 멀어져있는 게 한국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한글이 만들어져서도 아니고 한국전쟁 이후로 수 많은 노력을 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어의 표기 문자인 한글 위주로 모든 신문과 서적이 나오게 되었고 우리도 그에 익숙해 졌기 때문입니다. 한국어 표기에 한자를 거의 배제하고 한글 위주로 표기가 이루어진 것도 고작 몇년 안됐죠. 1988년 문화교육부에서 한글 맞춤법 변경과 함께 신문 등에서 한자 표기를 제외하기 시작해서 비로소 한자를 배제한 한국어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한자 잘 몰라도 책 읽고 신문 보고 뉴스 보고 다 할 수 있죠. 그게 20년 전만해도 불가능했습니다.
일본어의 예를 들어보죠. 저는 오히려 3개국에서 가장 칸지를 골 때리게 쓰고 있는 곳이 일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어의 칸지는 주로 두 가지 용도인데, 하나는 고유의 일본어를 칸지로 표기한 것들입니다. 칸지의 발음과 무관하게 쓴 것들이죠. 한국어의 예를 들어보자면, '가다'라는 단어를 '行다'라고 쓴 다음 다시 '가다'라고 읽는 셈입니다. 즉, 고유 언어 표기에 뜻만을 빌린 것이죠. 그 다음은 칸지고(=한자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어에서 이 칸지는 그 뜻을 이해하고 쓰는 것일까요? 역시 아니죠. 소위 한자를 많이 알면 일본어 잘 할 거라는 속설이 있는데, 대충 짐작으로 한자만 읽는 것이지 그건 일본어를 하는 게 아닙니다.
중국어를 보자면, 이 쪽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한쯔를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웠던 것에서 표기에 사용하는 한쯔의 수를 확 줄이고 그 다음 획수마저 줄여버렸습니다. 과거의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급격한 변화를 이룬 곳이 바로 그 중국입니다. 너무 많은 개수의 한쯔와 너무 어려운 발음. 그리고 각 지방별로 다른 중국어를 통일하고 쉽게 만들었죠. 그게 문화혁명 때 일어난 일입니다. 문화혁명에 대해서는 수 많은 문화인에 대한 숙청이 일어져 피의 혁명이기도 하나, 이 변화만큼은 좋은 영향을 줘서 중국에서 문맹률을 줄여나갈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죠. 이로써 과거의 한자 문화권에서 가장 변화된 형태의 한쯔를 쓰고 있습니다. 모양이 가장 다르죠.
자 그럼 문제는 이것입니다. 한자 문화권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외국어를 특별한 한국어의 한자 독음으로 읽어야 하는가? 라는 이 예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서 가능한 예외 없이 어느 나라에 대해서도 같은 원칙으로 해야함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미 한글 맞춤법의 외래어 표기에 대해서 과거의 인물에 대해서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죠.
문교부 고시 제85-11호(1986. 1. 7.) 외래어 표기법
제4장 인명, 지명 표기의 원칙
제1절 표기 원칙
제1항 외국의 인명, 지명의 표기는 제1장, 제2장, 제3장의 규정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2항 제3장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언어권의 인명, 지명은 원지음을 따르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3항 원지음이 아닌 제3국의 발음으로 통용되고 있는 것은 관용을 따른다.
제4항 고유 명사의 번역명이 통용되는 경우 관용을 따른다.
제2절 동양의 인명, 지명 표기
제1항 중국 인명은 과거인과 현대인을 구분하여 과거인은 종전의 한자음대로 표기하고, 현대인은 원칙적으로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제2항 중국의 역사 지명으로서 현재 쓰이지 않는 것은 우리 한자음대로 하고, 현재 지명과 동일한 것은 중국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제3항 일본의 인명과 지명은 과거와 현대의 구분 없이 일본어 표기법에 따라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경우 한자를 병기한다.
제4항 중국 및 일본의 지명 가운데 한국 한자음으로 읽는 관용이 있는 것은 이를 허용한다.
<보기>
東京 도쿄, 동경 京都 교토, 경도
上海 상하이, 상해 臺灣 타이완, 대만
黃河 황허, 황하
즉, 현재 외래어 표기법에서도 수 많은 예외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한자, 칸지, 한쯔라는 특별한 문화를 인정하고 있죠. 저는 이 예외 역시 앞으로 세월이 흐르면서 이 표기법에 익숙해지면서 서서히 줄어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두 가지 패러다임이 충돌하고 있죠. 동양권 문화 안에 있는 인명, 지명 등의 고유 명사에 대해 한국어의 한자 독음으로 읽고 써야 한다는 패러다임과, 어느 나라던 현지 발음에 근접한 한국어 표기를 해야한다는 패러다임이죠.
이 패러다임은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 전혀 다른 방향을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영원한 평행선으로 서로 합의점을 못 찾는 것입니다. 그리고 합의할 필요도 없고요. 그냥 두 패러다임 중 하나가 원칙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미 우리의 한글 맞춤법의 외래어 표기법은 후자의 패러다임을 목표로 하고 있고 우리 생활도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죠. 저우런파, 즉 주윤발이라 우리에게는 익숙한 홍콩의 배우입니다. 우리에게 저 외래어 표기법이 정착되기 전에 알려진 이 배우의 이름은 저우런파보다는 주윤발로 더 익숙하죠. 그런데 장쯔이는 어떨까요? 이 배우 이름 한자 독음 아시는 분? 그냥 지금은 변화하는 시기니까 그 이전 사람의 이름은 덜 익숙하고 이미 바뀐 표기법에 맞추어진 이름은 바뀐 이름이 더 익숙하고 그렇죠. 여러가지가 혼재하니까 불편하니 통일하자, 라는 이야기는 좋습니다만 왜 한국어의 한자 독음으로 돌아가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문제는 간단합니다. 두 개의 서로 타협점이 없는 패러다임의 충돌. 이것은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이 없고 서로 중간점도 없기 때문의 하나의 패러다임이 결국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는 두 패러다임이 섞여있는 상태인 것이죠. 물론 저는 현지 원음 위주의 외래어 표기법에 아주 찬성합니다. 외국 고유 명사를 한국어로 옮겨 쓸 때 이걸 한자로 뭐라 읽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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